전국2팀 기자 고교 시절 농사·참외장사·금광 막장일, 서울대·행정고시 합격, 내무부·총리실·청와대 근무…. 지난해 지방선거 때 이시종 충북지사의 선거공보 내용이다. 시쳇말로 개천에서 용이 된 흙수저의 인생 역정이 담겼다. 그는 지난해 또 당선하면서 충주시장·충북지사 각각 세차례, 국회의원 두차례 등 ‘8전8승’ 선거 불패 신화를 이었다. 당시 선거공보는 중앙 부처를 가장 많이 찾는 도지사여서 ‘기피 대상 1호’라고도 소개했다. 실제 지역에선 ‘예산 지사’로도 불린다. 이 복선은 요즘 그의 화두 ‘명문고’로 이어진다.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충북의 인재가 걱정이다. 중앙 요직에 충북 출신 찾기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없는 집안 일으키려면 똑똑한 자식 하나 잘 키워 큰물에 보내야 한다는 옛말로 읽힌다. 지난해 12월 김병우 충북교육감과 나눈 무상급식 예산 분담 합의서에도 ‘명문고 육성 공동 노력’ 조건을 얹었다. 40여년 정·관계를 누빈 노장의 충정을 두고 지역에선 뜻이 갈린다. 한쪽에선 “지사의 말이 맞다. 명문고 서두르자”고 하지만, 다른 쪽에선 “때가 어느 때냐. 명문고는 교육 파행을 부른다”며 손사래 친다. 충주 출신인 그는 평준화 전 당대의 명문 청주고에서 유학했고, 명문대·고시를 거쳐 ‘충북 출신 중앙 요직 인사’로 성장했다. 혹시 그가 염두에 둔 명문고는 중앙 요직으로 가는 교두보는 아닐까? 그의 ‘명문고’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다. 지난 14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게 ‘충북 자율형사립고’ 설립을 건의했다. 충북도는 “전국에 58곳의 명문고(자사고, 국제고, 영재고)가 있으나 충북만 없어 지역 인재는 유출되고, 인재 유입은 어렵다. 지역 인재 소멸 위기”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지사의 자사고 모델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기업이 설립·운영 자금을 지원하고, 전국에서 우수 인재를 모집하는 형태다. 굳이 범위를 좁히면 서울 하나고 형태다. 하나고는 하나금융그룹이 투자한 전국 단위 자사고다. 지난해 50여명, 올해 40여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 지사는 지역에 연고를 둔 에스케이하이닉스에 명문고 설립을 위한 투자를 제안했지만, 에스케이 쪽은 아직 답이 없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문재인 정부 교육철학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교육부문 국정과제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에서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제시했다. 교육행정 파트너인 김병우 충북교육감의 생각은 어떨까? “이 지사의 생각은 남 하는 게 부러우니 따라가자는 것인데 시대착오적이다. 그럼 필패한다.” 김 교육감은 국가 주도형 미래고를 제시했다. 국가교육회의 등이 성적 위주의 수업을 창의형 수업으로 혁신하는 새 모델을 마련하고, 국립 한국교원대 부속고를 통해 실험·적용하는 것이 뼈대다. 어쩌면 이 지사와 정반대의 길이다. 또 하나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충북에 세울 자사고에서 3년 공부한다고 충북 출신이 될까? 이들이 중앙 요직에 진출해 이 지사의 충북 사람이 돼줄까? 우리 교육에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보여준 것처럼 이 ‘명문고’가 사교육, 성적지상주의 문제를 낳지는 않을까? 김 교육감을 포함해 충북 정·관계에서 이 지사의 고향 충북을 향한 진심과 성실을 의심하는 이는 적다. 하지만 ‘명문고’를 놓고 여당 지사와 진보 교육감의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사고 대 미래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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