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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연금 사회주의, 원조는 미국이다

등록 2019-01-29 18:10수정 2019-01-31 15:07

[주진형 칼럼]
경영진의 권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에서 노동조합이 경영참가를 요구하자 사용자 측에서 노동권에 대립되는 말로 대두되었다. 경영권은 법률상으로 독립된 명확한 개념이 아니며, 사용자 측이 노동기본권에 대항하기 위해 마련한 이념적 산물에 불과하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지난해 여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제한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신속하게 입장문을 내서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서면 자칫 경영권 침해, 나아가 시장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주주 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경영 참여’는 보류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여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재계와 주류 언론들은 이를 경영권 침해라고 하고, 연금 사회주의가 우려된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생각해볼 일이 있다. 이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경영권이란 무엇인가? 경총이 말하는 경영권을 영어로 번역하면 ‘management right’인데 나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수많은 영문 글에서는 이런 용어를 본 적이 없다. 그럼 이들이 말하는 경영권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또 연금 사회주의는 무슨 뜻에서 사회주의라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주의라면 그건 나쁜 것인가? 나쁘면 왜 나쁜 것인가?

권(權)은 권리(權利)의 약자다. 권리는 인간과 집단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힘으로서 법이 보호하는 이익을 뜻한다.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을 의미한다. 이렇게 법률이 보장하는 이익을 우리는 흔히 ‘○○권’으로 표현한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참정권, 재산권, 노동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경영권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기껏해야 노사관계에서나 언급되는 권리다. 경영진이 회사 경영 방침이나 정책 실행을 할 때 노조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경영을 할 수 있는 권리라는 뜻이 전부다. 그리고 이러한 경영진의 권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에서 노동조합이 경영참가를 요구하자 사용자 측에서 노동권에 대립되는 말로 대두되었다. 이와 같이 경영권은 법률상으로 독립된 명확한 개념이 아니며, 사용자 측이 노동기본권에 대항하기 위해 마련한 이념적 산물에 불과하다.

연금 사회주의는 원래 피터 드러커가 1976년에 쓴 유명한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만약 사회주의를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고 정의한다면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사회주의화된 국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위한 기업의 퇴직연기금이 그 당시 미국 상장기업 지분의 25%를 갖고 있고 자영업자나 공무원, 교사 등을 위한 연기금이 10%를 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연금 사회주의는 이미 당시에도 미국 주식시장의 3분의 1을 노동자가 소유하고 있고, 향후 그 비중이 더 늘어나게 될 현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용어이며 그는 이 현상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의미는 무시한 채 그저 “사회주의”는 나쁜 것, 그러니까 연금 사회주의도 나쁜 것이라는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해 선전과 왜곡의 수단으로 연금 사회주의란 용어를 쓰고 있다. 연기금이 주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연금 사회주의가 우려된다는 사람들이 정작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게 나쁜 것인지를 제대로 밝힌 적은 한번도 없다.

다시 돌아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은 대기업 대주주의 명백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경영권 침해인가? 주주는 자기 의견을 주주총회에서 주장할 권리가 있다. 이건 재산권의 일부로서 법으로 보호받는 권리다. 반면에 경영권은 법으로 보호받는 권리가 아니고 노동자를 상대로 사용자가 쓰는 사회적 관용구에 불과하다. 경영진에게는 주주를 상대로 주장하고 보호받을 권리가 없다. 따라서 주주권 행사를 경영권 침해라고 맞받는 것은 재산권과 상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얘기다.

물론 아직도 국민연금기금은 지배구조상 독립성이 많이 부족하다. 주주권 행사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다는 모양새도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진그룹 총수 일가처럼 줄줄이 열거하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위법과 탈법을 저지른 경영진의 연임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수익률을 위해 이들의 연임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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