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대학교 초빙교수 일본은 자국 초계기가 우리 해군함정의 추적레이더(STIR)에 조사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일방적으로 협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국방부는 지난 23일 일본 초계기가 세차례나 더 우리 함정에 대해 저고도 위협비행을 하는 도발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자위대 스스로도 민감한 시기에 위협비행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초계기의 행태는 고도 및 거리, 비행패턴을 고려할 때 명백히 의도된 위협기동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우리 군이 일본 쪽의 근거 없는 주장에 유감을 표명하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사진을 공개한 것은 가짜뉴스가 기정사실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국제적인 망신을 각오하면서까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진실공방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일본은 프레임 선점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특정 행위 여부에 대해 시비를 가릴 때,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증거가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공개하지 않으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관계는 잊히고 일방적인 주장과 가해자-피해자 프레임만 대중의 뇌리에 남게 된다. 과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일으켰던 ‘운요호 사건’과 ‘노구교(루거우차오)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으로서는 동북아 긴장 상황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의 큰 줄기는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을 기반으로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일본 정권은 북한의 위협을 군사력 증강과 국내 보수 정치세력의 결집용 명분으로 적절히 이용해왔고,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내심 원했을 것이다. 자국 헌법에 반하여 전쟁이 가능한 국가, 공격이 가능한 군대로 전환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아베 정권에 북한의 도발은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도 방위대강과 중기방위계획(2019~2023년)에서 밝힌 군 전력 증강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에서 일본 정권은 이를 대체할 명분을 찾기 위해 분망했을 것이다. 우리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본군의 성노예 범죄행위 무마를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일본 내 보수세력의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자국 초계기가 큰 위협을 받았다는 프레임과 영상은 일본 정권에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최근 조용해진 북한으로 인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일본 정권에는 좋은 소재가 됐을 것이란 얘기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될수록 일본은 새로운 안보위협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이러한 가상 안보위협을 지렛대로 피해자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를 하며 항모를 건조하고 스텔스 전투기와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무기를 도입하면서 군사대국화를 노릴 것이다. 우리 군은 단기적으로 일본의 도발이나 억지주장에 대비하여 적절한 대응체계를 수립·훈련하고, 증거 확보를 위한 정찰·전자수집 등 관련 장비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주변국의 거친 도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전력구조와 작전계획도 정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공유·공감함으로써 그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적인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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