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좋은 기사란 무엇인가? 언론의 역할과 관련하여 항상 제기되는 질문이다. 독자로서 좋은 기사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뉴스다. 열독 뉴스는 단순히 사실만 나열한 뉴스가 아니라 열정을 자극하고 공감하게 하는 뉴스다.
이러한 뉴스는 ‘1919 한겨레’ 특집이다. 올해 1919년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기획된 ‘1919 한겨레’는 독자들로 하여금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독자들의 이성과 감성을 충분히 고양시켜,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기해년 새해 벽두를 장식하는 좋은 기획이다.
<‘알츠하이머 골프’ 전두환…“스코어 암산까지 했다”>는 1월18일치 <한겨레> 2면 머리기사도 아침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분노와 동시에 통쾌함을 가져다준 좋은 기사였다. 5·18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가톨릭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써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재판 출석을 거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강원도 골프장에서 골프 타수까지 암산했다는 것이다. 재판에 출석하지 않기 위해서 알츠하이머 핑계를 대왔던 전직 대통령의 거짓말을 백일하에 드러낸 기사였다.
사실, 독자들은 속 시원한 기사보다는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는 기사를 더 많이 접한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과 같은 비리와 적폐. 연일 터진 갑질 사건, 성폭력 사건과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 사건. 이런 기사들은 모두 2019년 오늘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개탄스럽고 참담한 기사들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미친 사교육과 막장 교육경쟁을 보여주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관한 기사도 교육개혁의 절박함만큼이나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미국 의회와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벌어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나,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켰다는 기사는 한국만 정치가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 위안(?)을 주는 기사다. 쿠르드족을 끌어들여 시리아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퇴치하려는 미국과 이에 반대하는 터키 사이의 갈등과 남미 콜롬비아 경찰학교에서 10명이 죽고 65명이 다친 폭탄테러 사건은 새해에도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럽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기사다.
아침에 신문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독자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신문 기사로 전달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상상해보면,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즐겁고, 경이롭고, 통쾌한 느낌의 표정보다는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가 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사건과 사고에 대한 보도 기사는 대체로 어두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사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활성화시켜 현실이 답답할지라도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해주는 기사다. 일회성 고발과 비판으로 그치는 기사가 아니라 이후에도 집요한 감시와 추적을 통해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사다. 탐사 보도와 추적 보도가 더 필요한 이유다. 기해년 새해 잠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과 같은 기사가 아니라 밤새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기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