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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의 손’ 의 비극과 교훈

등록 2005-12-15 18:02수정 2005-12-15 22:05

이인우 사회부 기자
이인우 사회부 기자
아침햇발
2000년 11월 어느날 아침 <마이니치 신문>을 펴든 일본인들은 경악했다. 일본 열도의 인류 역사를 60만년 이전으로까지 끌어올려 일본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한껏 드높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물 발굴이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는 기사와 함께 그가 몰래 발굴지에 석기를 파묻고 있는 사진이 폭로된 것이다. 마이니치의 이 특종으로 일본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후지무라는 1981년 당시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4만여년 전의 석기를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연대를 높여가더니 마침내 60만년 전에 현 일본인의 조상이 일본 열도에 살았음을 시사하는 유물을 발굴해 ‘신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의 발굴 결과는 ‘베이징 원인’에 비견되면서 교과서에 올랐고, 발굴지는 사적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그것이 가짜라니, 놀라 자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이 희대의 사기극과 유사한 사건이 20세기 초반 영국에서도 있었다. 당시는 프랑스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 같은 화석인류 유적지가 발견됐음에도 영국에서는 변변한 유골 하나 출토되지 않아 영국인들이 속상해하던 차였다. 그때 필트다운이란 곳에서 최초의 인류화석으로 볼 수 있는 유골이 출토돼 온 영국이 환호했다. 학계와 언론 일각에서는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최초의 영국인’ 발견을 열망하는 사회 분위기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40여년이 흐른 뒤에야 유골은 가짜였음이 드러났다. 과학저술가 김동광씨는 “이 사건은 과학연구가 성과주의나 국가적 경쟁에 휘말릴 때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한다.

후지무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조작이 20여년간 들통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대담하게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국익우선주의, 황국사관, 인종적·문화적 우월주의 따위가 암암리에 후지무라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의심하는 학자들도 물론 있었지만, ‘기념비적 업적’에 고무된 사회 분위기에 눌려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는 자괴 어린 한탄이 나왔으나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그런 점에서 마이니치의 보도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대중들의 정서에 반하더라도 진실이야말로 가장 큰 국익이라는 접근 자세는 언론으로서 올바른 것이었다.

최근 황우석 교수 연구를 둘러싼 소동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우리 사회는 경험하고 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앞장서 만든 황우석 신드롬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 교수를 어떤 집단적 자부심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일찍이 없었던 ‘과학영웅’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감성적인 애국주의를 분출하면서 이성적 토론과 비판의 여지마저 봉쇄했다. 과학연구가 점점 더 “연구자의 이해관계, 국가주의, 그리고 한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적 갈망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이제 이 거대한 소동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줄기세포 조작 가능성 주장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국민적 충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황 교수가 직접 나서서 진상을 낱낱이 국민 앞에 털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이 모든 의혹이 한바탕의 희극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실수나 과욕이 빚은 비극인지 온 세계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교육문제를 다루는 기자로서 가슴 아픈 것은 우리의 청소년들이다. 이번 사건이 혼란스럽게 충돌하는 가치와 주장들을 냉철하게 분별하고 판단하는 좋은 공부의 장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인우/사회부 교육취재팀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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