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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멘델레예프 주기율표 150년 / 조일준

등록 2019-01-20 07:33수정 2019-01-21 16:33

꼭 150년 전인 1869년 3월,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는 러시아 화학회에서 원소 주기율표를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까지 발견된 근본 물질인 63종의 원소들을 원자번호 1번 수소(H)부터 일정한 규칙으로 배열하고 그 원리를 밝힌 것. 35살 젊은 멘델레예프는 ‘반드시 있어야 할’ 원소의 존재까지 예언하고 주기율표에 그 자리를 남겨두었다.

놀랍게도, 몇년 뒤부터 갈륨, 스칸듐, 게르마늄 등 새로 발견된 원소들이 듬성듬성했던 주기율표의 빈칸을 속속 채우기 시작했다.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도 멘델레예프의 예측과 맞아떨어졌다. 오늘날 주기율표에는 인공합성 원소 26종을 포함해 모두 118종의 원소가 배열돼 있다.

멘델레예프의 업적은 어머니의 결단과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멘델레예프는 시베리아 서부의 토볼스크에서 1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3살 때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잃었다. 홀어머니는 대가족을 먹여 살리려 전 재산을 털어 유리공장을 인수했지만 곧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절망적 상황에서 어머니는 러시아판 맹모삼천지교를 결행했다. 15살 막내를 데리고 3천㎞나 떨어진 모스크바까지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고 험준한 우랄산맥을 넘어간 것. 그러나 모스크바대학은 외지인의 입학을 거절했다. 둘은 다시 600㎞를 더 달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너무 고된 여정 탓일까, 어머니는 아들을 러시아 최고(最古)의 국립대학에 입학시킨 뒤 눈을 감았다.

멘델레예프는 고학으로 공부에 맹진했다. 21살에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줄곧 수석이었다. 주기율표를 발표한 뒤로도 평생을 그 보완에 매달리며 원자의 실체를 쫓았다.

그는 일흔이 넘은 1905년에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가장 유력한 노벨 화학상 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노벨상은 프랑스 화학자 앙리 무아상에게 돌아갔다. 단 1표 차였는데 뒷말이 많았다. 불과 몇달 뒤인 1907년 2월, 멘델레예프는 73살에 폐렴으로 삶을 마쳤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의사 선생, 당신에겐 과학이 있고, 내겐 신념이 있소”였다.

유엔은 올해를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해’로 지정했다. 세상에는 생전보다 사후에 훨씬 진가를 인정받는 위인들이 많다. 멘델레예프도 그렇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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