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김세은 강원대 교수의 논문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2017)를 보면, 국회의원 가운데 언론인 출신의 비중은 제헌국회 때 20.5%로 시작해 한동안 15% 안팎을 유지하다가 14~16대에는 20% 안팎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17대(15.4%)부터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19~20대에는 8.7%로 내려앉았다. 논문은 언론인이 선출직이 되기 위한 경쟁을 통과하기 어렵게 된 환경을 지적한다.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등 관련 법률이 강화되면서 언론인보다 상대적으로 선거자금을 동원하기 쉬운 법조인이 유리해졌고, 어렵게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앵커나 아나운서가 아니면 당선되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에서도 최소 42명 이상의 ‘새로운’ 언론인들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공천·선거 단계를 통과한 이는 8명뿐이었다.
이처럼 선출직이 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된 것은, 청와대 또는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언론인이 많아지는 현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로 ‘직행’하는 언론인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김은혜 당시 <문화방송>(MBC) 기자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부대변인으로 간 뒤로 청와대에는 줄곧 언론인 출신들이 득실댔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여현호 전 <한겨레> 기자와 윤도한 전 <문화방송> 기자가 사실상 청와대로 직행해 우려와 비판을 불렀다.
이른바 ‘폴리널리스트’의 핵심 문제는 언론에 대한 신뢰를 쓰레기통에 처박는다는 데 있지만, 이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그렇다면 언론인 출신 정치가는 과연 우리의 정치를 풍요롭게 할까?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데마고그’, 곧 대중 선동가야말로 근대 민주주의가 성립한 뒤로도 서양에서 “지도적인 정치가의 전형”이라고 했다. 말과 글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치평론가나 저널리스트는 ‘예비 정치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부름’에 따라 하루아침에 자리를 옮기는 언론인들의 모습에서 과연 정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소명’이라도 읽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사 신의 부름을 받았더라도, 청와대의 부름이 없었던들 그들은 정치에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최원형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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