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기자 지난해 애덤 윌킨스의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읽으면서 무척 흥미로웠던 대목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인간 자신을 길들여왔다는 사실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 인류의 얼굴은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이마가 좁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가 진행되면서 주둥이가 들어가고, 이마가 넓어지는 등 지금의 얼굴 형태를 갖췄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침팬지와 비교를 하면 좀더 이해가 쉬운데, 현생인류의 얼굴은 성체 침팬지보다 어린 침팬지의 얼굴과 비슷하다. 주둥이가 없고 이마가 넓은 어린 침팬지의 얼굴은 인간과 흡사하다. 이렇게 다른 유인원들을 보면, 인간이 진화하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성년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유형성숙’이라고 말한다. 유형성숙은 다른 동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개, 고양이, 돼지, 말, 토끼, 양, 기니피그 같은 다양한 포유동물이 그렇다. 이들은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품종들은 새끼 때의 납작한 얼굴과 둥근 머리, 높은 친화력과 장난기를 성체가 되어서도 유지한다. 찰스 다윈은 처음으로 이런 여러 특징을 묶어 ‘가축화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60년대에 소련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가 선별적 교배를 통해서 사나운 은여우를 6세대 만에 꼬리가 위로 말리고, 귀가 접히고, 인간에게 애교를 부리는 가축화된 은여우로 만들어낸 ‘은여우 실험’은 가축화 신드롬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유명한 실험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만이 아니라 인간 자신 또한 길들였다. 초창기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고,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져가면서 인간에게도 유형성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둥이가 들어간 인간은 입 모양과 표정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됐고, 그렇게 향상된 의사소통은 지금과 같은 문명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까 인간은 귀여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말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이런 진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겉모습이 아닌 젠더 관념의 진화다. 도시화는 저출산을 낳고, 저출산은 자녀교육의 질을 제고했으며, 높은 교육수준은 높은 소득을, 높은 소득은 성별 간 평등한 정치사회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 이런 도미노처럼 필연적으로 진행되어온 사회적 변화가 구시대적인 남성중심주의와 부딪혀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변화한 세상에서 여성들이 ‘귀여운 남자’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가부장적이지 않고, 마초도 아니고, 때리지도 않고, 여자란 이유로 열등한 사람 취급하지도 않는 남성 말이다. 방송과 영화를 장악한 강다니엘, 박보검, ‘마블리’ 마동석은 그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들로 보인다. ‘귀엽다’는 말을 애교 많고 어리광 부린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건 개와 고양이처럼 반려동물화되는 것에 가깝다. 반려동물들은 ‘반려’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온 마음을 다해서 환대하고, 순수하게 애정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돌보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전까지는 여성들에게 집중되었던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살이를 하는 돌봄·감정노동을 남성들도 평등하게 나눠 맡는 것이 보편화할수록 말이다. 그건 우리가 쓰는 반려자라는 말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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