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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김정은-리커창의 파안대소 / 김외현

등록 2019-01-10 18:28수정 2019-01-11 09:33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3월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중국 방문을 축하하는 환영행사가 열렸다. 초청이 없어 직접 가보진 못했으니, 나중에 중국과 북한의 방송 보도를 통해 대략의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북한 방송 화면을 보다가 김 위원장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악수를 하는 부분에서 시선이 멎었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두 사람은 물론 뒤에 서 있는 시진핑 주석 부부까지도 파안대소했다. 한참을 악수한 뒤 리 총리는 리설주 여사와도 악수했고, 뒤이어 시 주석과도 악수했다. 그러나 시 주석과의 악수 땐 손은 잡되 얼굴은 김 위원장 부부 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이어갔다. 시 주석에겐 손을 놓으며 대략의 눈인사만 건넸다.

<조선중앙방송> 자료화면.
<조선중앙방송> 자료화면.

이 장면이 낯설었던 것은 그동안 베이징에서 숱하게 듣고 있던 리 총리와 관련된 소문들 때문이다. 몇해 전부터 세간엔 그가 권력에서 밀려나기를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베이징대 법대 출신 천재로, 공산주의청년단의 귀재로 승승장구하며 중앙 권력에 올라선 그가 명망가 자제인 시 주석과의 경쟁 및 권력투쟁에서 밀렸다는 소문이었다. 재작년 제19차 당대회를 앞두고는 건강 이상설까지 돌았다.

그런 리 총리가 시 주석 부부를 병풍처럼 세워놓고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모습은 중국 방송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장면이다. 제19차 당대회 이후 중국 공산당이 만든 ‘8항 규정(반부패 규정) 실시 세칙’을 보면, 중국 방송 뉴스는 당 총서기(시진핑)를 제외한 어떤 지도자의 목소리도 내보낼 수 없다. 총서기 외에는 관련 뉴스 길이가 2분을 넘겨서도 안 된다. 기사 글자 수, 취재기자 수 등도 제한이 있다. 권력 남용과 언론의 아첨을 막기 위한 조처이지만, 결국 모든 제한은 총서기만 돋보이게 만들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북한 방송사 카메라가 현장에 있었기에 중국 방송에 나오지 않는 리 총리의 비교적 건재한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북한 덕분에 엿보게 된 리 총리의 위상을 생각하면서, 북한이 갖추고 있을 중국에 대한 이해의 폭과 정보의 깊이가 실감이 났다. 김 위원장 환영 행사 때처럼 여러 상무위원들이 한자리에 있을 때 어떤 모습인지는 외부에서 들여다보기 힘들다. 중국의 권력구조는 투명하지 않다. 그러나 70년 동안 중국과 희비와 굴곡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가진 북한은 현재뿐 아니라 대대로 그것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 때는 상무위원 9명이 전원 참석하는 연회도 있지 않았던가.

지난해 3월 북한 방송이 전한 리 총리의 이런 모습은 ‘중국 관찰자’들도 별다른 해석을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김 위원장 방중 직전 시 주석의 2기 지도부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러면서 더 이상 리 총리의 이상 징후가 거론되지 않기 때문인 듯도 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일 다시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왔다. 이틀 뒤 나온 중국 방송 뉴스는 여전히 시 주석을 중심으로 다뤘다. 이날 환영만찬 소식을 전할 때는 시 주석 부부, 김 위원장 부부가 각각 앉아 있는 테이블과 두 정상이 축사를 하는 모습만 나왔을 뿐 다른 누가 참석했는지도 나오지 않았다. 북한 매체의 보도를 보고 나서야 양쪽 참석자들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은 감췄는데 북한이 공개해줄 수 있는 장면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이 이런 식으로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것은 흥미롭다. 언젠가 한-중 사이에서 북한이 역할을 맡는 날도 오지 않을까.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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