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감독·작가 지난해 10월에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 감독과 여성 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하는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는 한국 여성 감독 세 명의 작업이 소개되었고, 극영화 섹션 역시 여성 감독의 영화가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영화제 기간에는 ‘새로운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의 등장’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진 감독들의 대담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여성 감독과 안보영 프로듀서가 함께한 이 토크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지속가능한 제작 구조에 대한 고민이었다.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첫 장편영화를 나와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영화는 왜 ‘여성이 만든 사적인 영화’로 불리며 작고 사소한 것으로만 여겨지는지, 왜 ‘여성 감독’의 작업은 ‘여성 영화’라는 이름으로만 분류되고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 것인지, 왜 이런 종류의 대담 자리에서 여성 감독은 늘 ‘새롭게 등장’하기만 하고 더 깊은 담론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들의 영화는 ‘여성 영화’ ‘사적 영화’로 단순히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생과 엄마의 이야기를 전 과학 영재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윤주 감독의 <디어 마이 지니어스>, 감독 자신과 엄마,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기억의 파편들을 통해 가족사의 단면을 돌아보는 명소희 감독의 <방문>, 1980년대 소규모 건설업을 통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지만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이후 투자 실패로 거품처럼 사라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장애가 있는 행위예술가 친구를 기록하며 마주하게 되는 감독 자신의 마음에 대한 한혜성 감독의 <내가 모른 척 한 것>,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다룬 <기억의 전쟁>(감독 이길보라)까지. 경제성장과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경쟁 중심 사회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여성 감독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과연 관객을 만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영화 <버블 패밀리>가 지난 12월 개봉했다. 2017년 이비에스(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업이지만 상영관이 별로 없다. 대기업이 투자하고 만들고 배급하는 영화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걸리는 상황에서 이런 독립영화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어쩌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잡더라도 아주 이른 새벽 상영이거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차가 끊겨 있을 정도의 늦은 밤 상영 회차만 내준다. 전국의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은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고 있고 그 수도 많지 않다. 그건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5년에 개봉한 나의 첫 장편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여성 신진 감독의 약진이 돋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국외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한국 여성 감독의 작업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관객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 이를 악물고 영화를 완성해도 상영을 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두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우리, 여성 제작자만의 고민이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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