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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동맹의 ‘갑질’ / 박민희

등록 2018-12-30 17:14수정 2018-12-31 14:07

박민희

통일외교팀장

미국은 독일에 174개, 일본에 113개, 한국에 83개를 비롯해 686개(미 국방부 통계)의 해외기지로 전세계를 그물망처럼 덮고 있다. 데이비드 바인 아메리칸대 교수는 <기지국가>에서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기지를 합하면 미국은 70여개국에 800~1000개의 해외기지를 운영한다고 추정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해외 미군기지가 세번째로 많은 나라다. 공식적으로 주한미군은 2만8500명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러차례 3만2천명이라고 이야기했다.

미국의 요구로 한국이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첫 분담금은 1억5천만달러였지만, 계속 늘어 올해는 9602억원(약 8억6000만달러)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46%를 부담한다고 하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무상으로 제공하는 토지 비용 등을 계산하면 한국이 70~80%를 부담한다고 지적한다. “해외 미 육군 기지 중 최대”인 평택 기지 확장 이전 비용의 92%도 한국이 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더는 세계의 호구가 아니”라며, 연일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 대폭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한-미 협상 대표단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총액에 대한 이견을 거의 좁혔지만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간 데는 50% 이상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국을 본보기 삼아 일본,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까지 대폭 올리려 하고 있다. 한국이 분담금 대폭 인상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또는 북핵 협상과 연계한 카드를 이용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한국이 이런 ‘갑질’을 단호히 거부해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첫째, 트럼프의 압박은 한국의 대폭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 시나리오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실화는 어렵다. 트럼프는 더이상 대규모 해외 군사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고립주의를 외쳐왔고, 대신 비용이 덜 드는 제재나 경제적 압박으로 세계를 통제하려 한다. 반면 해외 군사기지가 미국 패권의 핵심이라고 보는 미국 주류세력은 트럼프가 그 뿌리를 흔드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다. 미군 해외 주둔의 미래는 미국 양대 세력의 격돌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셋째, 미군의 시리아·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주한미군은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의 셰일에너지 혁명 이후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은 줄었고, 미국은 실익 없는 수렁이 된 시리아·아프간에서 미군을 ‘탈출’시키려 애써왔다. 반면 중국 견제는 미국 세계 전략의 최우선 순위다.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겨냥해 벌이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중거리핵전력협정’(INF) 파기 움직임도 중국을 겨냥한다.

이런 전략 구도를 보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절실한 것은 오히려 미국이다.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식 셈법을 적용하면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할 것이다. 역사의 방향을 본다면, 한국은 주한미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전작권 환수를 착실히 추진하면서, 장기간 계속될 미-중 갈등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을 전략과 실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부당한 요구에는 반드시 답해야겠다. “우리는 미국의 호구가 아니”라고.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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