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모든 사회는 정보와 기술을 생산하고, 그중에서 가치 있는 것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공유하며,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근대사회는 인간, 사회, 역사, 자연과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가 지식이다.
교육은 지식을 확산시키는 활동이고,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활동이다. 오늘날 교육과 연구는 상당히 전문화되어 있다. 교육은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연구는 주로 대학과 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식의 소비는 개인, 가정, 시민단체, 정당, 기업과 공공기관을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사회의 각 부문은 지식의 생산, 유통과 소비로 이루어진 지식의 순환체계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사회는 거대한 지식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식 생태계에서 대중매체는 지식과 정보를 대중에게 유통시키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구실을 담당해왔다. 대중매체는 한 부문에서 생산된 지식과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유통시키는 기능을 담당하여, 공론장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해왔다. 화성에 착륙한 탐사선 ‘인사이트’가 전송한 화성의 사진을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매체의 사진 보도를 통해서 가능해졌다.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정기국회 활동에 대해서도 여의도에 가보지 않고도 매체의 보도로 알 수 있다. 지식 생태계 내에서 매체는 지식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구실을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매체 의존적 지식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정보와 지식의 유통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매체는 아직까지도 신문이다. 인터넷이 새롭게 지식 생태계에 진입하여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터넷은 플랫폼에 불과하다.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주체는 신문이다.
한국의 지식 생태계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지식은 누가 생산하는가?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주체가 지식 생태계를 지배한다. 그리고 지식 생태계를 지배하는 주체가 지식의 소비자인 대중의 생각을 지배한다. 상식처럼 여겨지는 ‘대중적 지식’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판단을 좌우한다.
한국의 지식 생태계에서 <한겨레>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보적인’ 매체를 자임해온 <한겨레>가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느 정도 바로잡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 만들어진 냉전적이고, 보수 편향적인 지식 생태계를 바로잡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오늘날 지식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과 소비가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가 아직까지는 한국의 지식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 한국의 지식 생태계는 고립돼 있다. ‘기본소득’이나 ‘자산소유 민주주의’와 같은 대안적인 사회제도에 관한 논의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세계 금융기관들이 내세우기 시작한 ‘포용성장’조차도 아직 한국의 지식 생태계에선 낯설다. 신자유주의 전도사였던 이들 기관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롭게 ‘포용성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
한국의 정책 담론은 아직까지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섬처럼 지구적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다.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권이나 관료사회가 전지구적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자학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변화된 지식 생태계에서 언론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유통과 확산에 충분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언론의 역할이 제한적이어서, 국민과 정책 입안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요즘 건강과 관련된 의학이나 생물학 연구 결과가 자주 신문에 소개되고 있다. 반면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내외 새로운 논의나 정책 담론은 그만큼 자주 신문에 소개되지는 않는다. <한겨레>가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구축하고, 건강한 정책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 더 큰 기여를 해야 한다. 한국의 정책 담론이 갈라파고스 이구아나와 같은 신세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