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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책의 해, 아셨나요? / 김지훈

등록 2018-12-16 18:26수정 2018-12-17 10:31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올해가 책의 해인 거 알아요?” 답은 역시나. “아니요. 몰랐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책의 해 관련 기사를 10건 넘게 썼는데 너무 관심 없는 것 아닌가요. 흑. 아내만이 아니라 일부 출판사 사람들도 책의 해인지 몰랐던 경우도 있을 정도니, 일반인들도 책의 해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정부 지정 해' 사업들이 대부분 그렇다. 공익적 목적으로 진행하는 착한 사업들이라 사람들의 이목을 확 잡아끌기 어렵다. 그나마 출판계에서 감각 좋다는 출판인들이 집행위원회를 이끌어서 북캠핑, 심야책방, 캣왕성 유랑책방처럼 관제 냄새가 나지 않는 재미있는 행사들을 선보였는데도 그렇다. 그래도 책의 해라는 카드를 25년 만에 꺼내 들었는데 정부가 달랑 예산을 20억원만 내놓은 것은 못내 아쉽다. 네이버가 책의 해에 맞춰 자체 기획 행사를 한다고 15억원이나 썼는데 말이다. 게다가 문화부 한개 부서에 맡겨놓고 교육부나 국방부, 보건복지부 같은 다른 부처들은 나 몰라라 했으니, 학교에서조차 홍보 포스터 한장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책의 해가 좀 더 잘되었으면 했던 건, 격차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최근 젠더 문제에 대한 남녀 간의 격차를 보면서 이런 걱정은 더 깊어졌다. 인터파크가 올해 판매한 페미니즘 책 구매자의 성별을 보니, 77%가 여성이고 23%만이 남성이었다고 한다. 교보문고의 올해 연령별 베스트셀러 자료를 보면, 100만부가 팔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10대 여성에선 1위, 20대 여성에선 2위, 30대 여성에선 3위를 했다. 하지만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베스트셀러 상위 열권 목록에 이 책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것이 결정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읽는 것이 결정한다. 이렇게 남녀 간에 접하는 텍스트의 내용과 양이 차이가 크니, 남성들의 젠더 의식이 현격히 뒤처질 수밖에 없지 않나.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서 벗어나 다른 성별이나 계급,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알기 위해선 책이라는 매체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난해 한겨레가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던 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에선, 의무 교육이 끝난 이후에 성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건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작동하는 교실이란 환경을 벗어나면, 누군가를 앉혀놓고 방해받지 않으며 10분 이상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합리적 사고는 집중을 요구하고, 언어 기반이며, 환경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그게 바로 책이다. 히스는 “설명하려면 1시간 넘게 걸리는 주장과 이론에 대해서 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젠더만이 아니라 세대 문제, 재벌 개혁, 이민자·난민, 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들이 개인 경험의 한계 안에선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차분히 주장을 따라가고, 타인의 상황을 접하면서 자신을 넘어서는 일에 훈련되어 있는 시민을 많이 확보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다.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시장의 손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이유다. 다행히 책의 해 20억 예산을 없애지 않고 내년에도 독서 진흥을 위해 사용한다니, 이를 기반으로 정부 부처 간의 벽 없이 노력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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