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에 동의한 국민 비율(단위: %) 세계가치기준(World Values Survey) 자료(광주과기원 김희삼 교수 제공) (* 표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상대를 중심으로 한 ‘상위 1% 수학자’ 논란이 일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말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의 여성 수학자를 보도했는데, 다른 분야 연구자가 조사해보니 실적 부풀리기를 넘어 연구윤리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수백편의 국제학술지 논문과 높은 인용지수를 과시해온 연구자들의 논문 심사진은 대개 친분 깊은 동료였으며, 이들은 서로 논문을 품앗이 인용하면서 인용지수를 높였다. 하지만 ‘상위 1% 수학자’ 90명 중 필즈상 수상자는 한명뿐이었고, 해당 학술지와 리뷰어들은 주류 수학계에서 사실상 내쫓긴 상태였다. 연구자 평가가 주로 정량지표에 의해 이뤄지고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같은 학술정보 분석업체가 이를 상업화하자, 일부 수학자들이 ‘상위 1% 학자’ 알고리즘을 개발한 셈이다.
학술지 대부분은 전문가 심사(피어 리뷰)를 거쳐 게재 여부를 정한다. 피어리뷰는 논문의 결함, 중요성과 개선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학술 연구는 대개 연구자 개인이 수행하지만, 꼼꼼한 동료심사 시스템 덕분에 타당성과 논리를 갖추게 되며 학계 공동의 자산이 된다. 가장 꼼꼼한 피어리뷰 시스템의 학술지가 최고 저널이 된다.
전문직은 동료에 의한 윤리기준과 실행기준 감시를 받는다. 전문직 업무의 전문성은 외부 평가를 어렵게 한다. 의사협회·변호사협회 등 단체는 회원 자격을 징계도구로 삼는다. 전문직군에 직업윤리가 각별한 이유는 의사처럼 생명을 다룬다는 특성 등도 있지만, 외부로부터 권위와 자율성 확보가 생명인 배경도 있다. 전문직군 전체가 불신과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내부의 자율적 윤리기준이 외부의 강제보다 엄격해야 한다.
고교 시험 답안지 유출, 공금유용 가짜학회 출장, 교수 자녀 논문필자 등재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교육 불신이 커지고 있다. 세계가치조사(2010~2014년)의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에서 한국인은 27%라고 응답해 조사대상국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표 참조) 국가 권력기관의 책임자들과 두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은 더 추락한다. 인공지능 시대는 진짜와 식별 불가능한 가짜가 등장하는 세상이고 신뢰는 더욱 희소해질 전망이다. 사회자본인 신뢰를 쌓으려면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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