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남부 부스라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시절의 모자이크 벽화에 낙타 행렬을 이끄는 카라반 상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작은 마을 푸슈카르에선 매년 11월(힌두력 8월)이 되는 날부터 보름 동안 성대한 전통 축제가 열린다. ‘푸슈카르 페어’(Pushkar Fair)는 특히 보름달이 뜨는 마지막 이틀간 낙타를 비롯해 말, 소, 양 같은 가축을 사고파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축시장이 백미다. 1만~2만 마리의 낙타와 수십만명의 상인과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 처녀 총각들의 전통 집단 혼례와, 낙타를 화려한 꽃과 장신구로 한껏 치장하는 낙타 미용 경연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매년 인도 서북부 유목마을 푸슈카르에서 열리는 ‘푸슈카르 낙타 페어’에서는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낙타들이 선보인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접국 파키스탄의 남동부까지 펼쳐지는 사막 지대에서 지금도 유목생활을 하는 이곳 주민들에게 낙타는 매우 긴요한 가축이다. 낙타는 건조하고 일교차와 모래바람이 심한 기후에 최적화된 동물이다.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유치환, <생명의 서>)에서도 끄떡없는 생존력 덕분에 ‘사막의 배’로 불린다.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2000년 동안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 권역을 잇는 동서 교역은 실크로드로 불리는 육로를 이용한 중개무역이었다. 그 주인공이 ‘카라반’(caravan)이다. 페르시아어로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뜻하는 ‘카르반’에서 유래했다. 한창때 카라반은 많게는 150마리가 넘는 낙타에 진귀한 상품과 이색 문화를 함께 실어 날랐다. 한 행렬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게 무리여서, 중간중간 거점 구간을 릴레이로 잇는 방식이었다. 어떤 경로든 고산, 사막, 초원, 황야 등 거친 자연을 몇 달에 걸쳐 지나야 했으며, 때론 도적들의 습격에 노출됐다. 상품 값은 뛰었고, 카라반은 막대한 중개 차익을 남겼다. 산업화 이후 비행기와 트럭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대규모 낙타 카라반은 점차 사라졌다.
매년 인도 서북부 유목마을 푸슈카르에서 열리는 ‘푸슈카르 낙타 페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축 시장이 백미다. ‘푸슈카르 축제 2018’ 누리집 갈무리
지금 신대륙 아메리카에선 또다른 ‘카라반’ 행렬이 무작정 미국으로 향한다. 온두라스·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에서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진 난민들이다. 멀고 험한 길을 ‘함께 여행하는 집단’인 건 맞는데, 목적지에선 환대 아닌 냉대와 추방 위협에 막히고, 막대한 이익은커녕 당장의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한다. 유례없는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의 턱밑에는 빈곤과 폭력의 그늘이 한없이 짙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