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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일제 식민통치자의 동상을 세우다 / 김외현

등록 2018-11-29 19:06수정 2018-11-30 10:13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악독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인의 업적을 기려 동상을 세우는 게 가능할까? 대만에선 가능하다.

대만 남부의 고도 타이난에는 17세기 네덜란드 점령기 때 섬 전체의 지휘부가 있었던 적감루(츠칸러우)가 있다. 원래는 서양식 벽돌건물이었다. 그러나 지진과 태풍이 잦은 기후, 그리고 정성공~청나라~일제로 이어진 정복자 교체를 겪으며 지금의 복잡한 모습이 됐다. 적감루는 서양식 벽돌로 된 기초가 흔적으로 남아 있고, 현지 전통 양식의 2층 누각, 유교·도교식 사당, 많은 기념비가 혼재한 관광지다.

누각 한편에는 일본인 흉상이 있다. 일본 점령기인 1942~45년에 타이난 시장을 역임한 하토리 마타오(1892~1975)다. 그는 황국신민화 운동의 영향으로 공자묘에 설치된 일본식 신단을 없애고,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 무기제작용 고철로 징발되는 것을 막는 등 문화재 보호와 복원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태평양전쟁 기간임에도 예산을 편성해 적감루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대만 총독부는 원치 않았고 일본군의 탄압도 있었지만, 결국 1944년 복원 작업이 마무리됐다. 복원 공사 개요는 비석으로 남아 있다.

하토리는 일본 패전 뒤인 1947년 귀국했다. 흉상이 세워진 것은 2002년으로, 타이난 기업가 쉬원룽 등이 그의 탄생 110년을 기념해 추진했다. 이들은 애초부터 흉상을 적감루에 세우려 했다. 그러나 시 당국이 허락할지 어떨지 몰라, 어느 날 새벽 몰래 적감루에 흉상을 가져다놨다. 당국의 묵인 속에 시간이 지났고, 일본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쉬원룽은 2007년 하토리의 고향인 군마현에 똑같은 흉상을 보냈다. 2012년 이 흉상을 모신 사찰에서 탄생 120돌 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는 대만의 청천백일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렸다. 하토리의 3남이 가족 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참석자들은 탄생 130돌 행사는 타이난에서 열자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문화재 보호 공로가 있는 인물이라 해도 식민지 시절 일본인의 동상 건립은, 일제에 대한 항거를 정통성의 바탕으로 삼는 한반도 남북 정권이나 중국 공산당 쪽에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지난 몇백년간 대만에서 살아온 ‘본성인’(민진당 주력 지지층)들이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보다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장제스와 국민당이 데려온 ‘외성인’들을 더 싫어한다는 게 괜한 얘기가 아니다. 단순한 ‘친일’과 ‘반일’이 아니라 대만 본토에 이로운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친중’과 ‘반중’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다뤄진다.

지난 24일 대만 지방선거가 야당 국민당의 압도적 승리인 동시에 집권 민진당의 참패로 끝났지만, 하토리 흉상을 가능하게 했던 대만 사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을까? 아닐 것이다. 가령 2014년 입법원(의회) 점거 사태인 ‘해바라기 운동’의 결과로 이듬해 창당한 진보정당 ‘시대역량’은 시의원 선거에 40명이 출마해 16명이 당선되는 높은 당선율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민진당 정부의 진보 의제가 실패한 거라 진단하지만, 시대역량은 민진당보다 훨씬 본토 중심적이고 진보적이다.

집권 3년이 채 안 돼 ‘민진당 피로감’이란 표현이 벌써 등장할 정도로 대만의 권력 이동 주기가 짧아진 듯하지만, 표심이 시계추처럼 국민당과 민진당을 오가면서 본토 중심의 이익 추구는 더욱 공고히 다져지는 모양새다. 대만을 통일 대상으로 보는 중국이 관광 등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민당 소속 당선자들과 연결 지점을 찾으려 하는 분위기임에도 국민당이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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