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가 ‘큰 속임수’란 제목으로 보도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삭간몰 위성사진.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인 월터 리프먼은 1920년 찰스 머즈와 함께 <뉴욕 타임스>의 러시아혁명 관련 뉴스를 분석했다. 당시 미국 자유주의 진영의 대표적 주간지였던 <뉴 리퍼블릭>에서 일했던 두 사람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3년간의 <뉴욕 타임스> 기사 3천개를 분석했다.
두 사람의 연구 결과는, <뉴욕 타임스>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희망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뉴스는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들을 기사화했고, 볼셰비키는 붕괴의 벼랑에 몰려 있다는 것이 91회나 있었다. 리프먼과 머즈는 “최고의 검열관과 최고의 선전가는 보도 기자들과 편집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과 공포였다”고 썼다.(임상원, <저널리즘과 프래그머티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도 <뉴욕 타임스>는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학자 올리버 보이드배럿의 연구를 보면,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다루면서 펜타곤 관리들, 미국 내 이라크 망명정치인 그룹들과 유착돼 왜곡된 보도를 양산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점령 이후 어디서도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2004년 <뉴욕 타임스> 퍼블릭 에디터 대니얼 오크런트는 밀러의 기사들이 상당 부분 조작됐다며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사과 글에서 “리프먼과 머즈가 1920년 지적했던 <뉴욕 타임스>의 잘못이 이라크전쟁에서도 재연됐다”고 썼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북한 내 비밀기지 16곳을 위성사진으로 확인했다며 특히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일대를 집중 조명했다. <뉴욕 타임스>는 “위성사진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후 ‘큰 속임수’라는 표현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대체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미사일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오도 기사’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을 놀라운 소식인 것처럼 과장했다는 것이다.
삭간몰 기사 논란은 최고의 정론지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타임스>조차도 1920년대 이후 여전히 가짜뉴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전 보도처럼 큰 잘못을 한 경우 사과라도 하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반성조차 없이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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