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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미래에서 온 목소리 / 김지훈

등록 2018-11-25 18:00수정 2018-11-25 19:18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대학교에 입학하면 바로 위 학번 선배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밝으면서도 섬세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후배들한테 서로 존칭 없이 이름만으로 부르고, 서로 반말을 하자고 했다. 재수를 한 나와 나이는 같지만, 그가 나보다 서너살은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문명진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내가 <한겨레>에 입사한 뒤였다.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인 2010년 12월, 그는 입대 영장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그 뒤 1년3개월 징역살이를 하며 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제게 있어 군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을 내면화하는 공간입니다. … 개인의 양심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명하달의 조직문화,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와 같은 군사문화가 군대를 통해 사회 전반에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 읽은 그의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학교 후배와 하는 대화에서도 예민하게 불평등함을 감지했던 그의 민감한 지성과 감수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에서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였다.

최근 국방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의 2배인 36개월로 하고, 복무 기관도 교정시설로 한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기에 처벌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유럽인권재판소,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은 “대체복무는 군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지금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1년 반가량 교정시설에서 지내면서 취사, ‘소지’(사동 도우미), 영치품 관리 등의 일을 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기간을 2배 넘게 늘려 이런 일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방침이 징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군대를 다녀왔지만, 군대라는 집단의 근본적인 의미에 관해 성찰할 정도로 생각이 깊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다 가니까 나도 갔다 오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배처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이 우리에게 잊지 않아야 할 무언가를 상기시켜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군대란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죽일 목적으로 체계화된 조직이며, 근본적으로 전쟁은 정의로울 수 없고, 애국과 같은 어떤 아름다운 이유로도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불의하다는 사실과 같은 것들 말이다.

병역을 남들보다 쉽게 마치려는 이들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가치가 바래지 않도록 대체복무제의 기간과 분야를 현역 군생활보다는 무겁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는 국제 기준에 비춰봤을 때 복무 기간이 1.5배를 넘어선 안 되고, 소방이나 치매 노인 또는 장애인 돌봄 등 대체복무자들의 성향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더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역거부, 채식주의, 동물 보호, 성소수자 등 앞선 실천을 하는 소수자들의 ‘미래에서 온 목소리’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우리를 더 다양하게 하고, 무엇보다 강하게 할 것이다.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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