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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플루스 울트라’의 미래 / 조일준

등록 2018-11-14 17:37수정 2018-11-14 19:24

하늘을 짊어진 아틀라스의 대리석 조각상.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출처 위키피디아
하늘을 짊어진 아틀라스의 대리석 조각상.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출처 위키피디아
서양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지중해는 인간 세상에 속한 바다의 전부였다.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광대한 영토의 내해로 거느리고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이 바다의 서쪽 끝에서 유럽의 남단과 아프리카 대륙 북단을 최소 폭 14㎞의 좁은 틈으로 겨우 벌려놓은 바닷길이 지브롤터 해협이다. 양쪽 땅 해안에 각각 솟은 바위산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불린다. 논 플러스 울트라(Non Plus Ultra), 즉 ‘더 나갈 수 없는’ 세상 끝의 경계였다.

해협 너머 ‘마레 이그노툼(Mare Ignotum, 무지의 바다)’이 대서양이다. 영어 낱말 ‘애틀랜식 오션(Atlantic Ocean)은 그리스 신화의 티탄족 신 아틀라스에서 왔다. 제우스와 맞붙었던 티탄족이 참패한 뒤, 대지(가이아)의 끝에서 천체(우라노스)을 어깨에 짊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그 바다에 있었다는 전설의 섬나라가 아틀란티스다. 지중해 문명 시대만 해도 대서양은 ‘우리의 바다’가 아닌 ‘신들의 바다’였던 것.

16세기 스페인 왕실 문장. ‘플루스 울트라’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출처 위키피디아
16세기 스페인 왕실 문장. ‘플루스 울트라’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출처 위키피디아
해협의 유럽쪽 관문인 지브롤터는 오늘날 영국령이지만,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빼앗기기 전까지는 스페인 영토였다. 지금도 스페인 국기의 한가운데 국장(國章)에는 양쪽 끝 헤라클레스의 기둥에 묶인 리본에 고대 세계의 인식과는 정반대로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 저 너머 더 멀리)’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16세기 중반 신성로마제국 황제(카를 5세)를 겸했던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왕실 문장에 새겨넣었다는 이 문구는 유럽에서 막이 오른 ‘지리상의 발견’ 시대를 반영한다. 앞서 1492년,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려다 카리브해의 한 섬에 닿았다. 본인은 끝내 몰랐지만, 구대륙 유럽이 신대륙 아메리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중남미는 스페인, 북미는 영국이 주축이 된 유럽인들의 무력 정복과 대규모 이주, 수탈과 개발, 신생국 독립이 잇따랐다. 유럽과 미주 국가들은 혈통과 언어의 동질성, 문화적 친밀감 덕에 지금도 ‘트랜스 애틀랜틱(Transatlantic·대서양 양안)’으로 통할 만큼 가깝다. 특히 미국과 서유럽의 관계는 정치·군사·경제적 동맹 수준이다. 수백년 이어져온 그 끈끈함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년만에 한없이 껄끄러운 관계로 변했다. 최근 제1차 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유럽을 비롯한 세계 70여개국 정상들이 프랑스에 모여 배타적 민족(국가)주의라는 악령의 부활을 경고한 게 예사롭지 않다. 한반도 평화도 말만 어지럽고 실질적 진전이 더디다. 500년 전 정복국가의 비전이었던 ‘플루스 울트라’의 미래는 지리적 확장을 넘어 인류의 보편가치와 이상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아메리카 퍼스트’밖에 모르는 트럼프의 유아독존식 행보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무지의 바다’에 좌초하는 난항처럼 보인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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