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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1991년을 기억하는 법 / 백기철

등록 2018-11-08 15:06수정 2018-11-08 19:46

백기철
논설위원

27년 전 그의 맑고 앳된 얼굴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날 이후 그에겐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슬픔, 무력감 같은 게 배어 있었다. 1991년 여름 자진 출두하며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애처롭던 눈매는 올가미에 걸린 사슴을 떠올리게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91, 봄>은 강기훈이 겪은 터무니없던 삶의 궤적을 기타 선율에 실어 전한다.

기타 줄을 튕기는 손길이 어딘지 힘에 부쳐 보인다. 함께 연주하는 젊은이들은 그를 “강기타 선생님”이라 부른다. 강기훈 말고 ‘강기타.’

이른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이젠 ‘김기설 유서 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희대의 사건 피해자인 그는 ‘맨발의 기타리스트’다. 91년 봄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각본에 휘말려 청춘을 통째로 날린 강기훈은 이제 기타와 카메라를 둘러멘 방랑자다. 묵직한 기타 선율만이 수없이 잠 못 이루고 육신마저 병들게 했을 고통의 세월을 녹여내고 있다.

1987년이 승리의 봄이었다면 1991년은 시련의 봄이었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면서 전선은 다시 타올랐다. 민중은 87년 6월항쟁의 여세를 몰아 이번엔 군사정권을 끝장내자는 결의로 가득 찼다. 당시 초년병 경찰 출입기자였던 내게 타사 기자들은 ‘혁명이 진짜 일어나는 거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은 퇴조기로 들어섰다. 민중과 군사정권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고, 이 와중에 11명이 분신하거나 공권력에 희생됐다. 군부는 유서 조작 사건으로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총력전을 폈고, 민중은 거기서 패퇴했다. 87년은 모두가 기억했지만, 91년은 애써 잊혔다.

영화 <1991, 봄>에서 강기훈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필앤플랜’ 제공
영화 <1991, 봄>에서 강기훈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필앤플랜’ 제공
스크린으로 강기훈의 기타 연주를 듣고선 그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기훈은 자살방조, 유서대필범으로 몰려 3년 옥고를 치렀다. 24년 만인 2015년에야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은 허위로 판명 났다. 무죄가 확정되던 날, 그가 법원에 나오지 않은 건 아마도 그를 파괴한 세상에 대한 무언의 항거였을 것이다. 그 파괴범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슨 적폐 청산, 과거 바로 세우기를 또다시 제기할 생각은 없다. 이 사건은 검찰·법원·언론·국과수 등 공적 기관들이 기득권 세력의 기대와 희망, 추측을 현실로 둔갑시켜준 총체적 사기극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한 적 없다. 역사는 때론 불공평해 보여도 언젠가 그 죗값을 묻게 마련이다.

강기훈을 힘들게 한 건 국가 폭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해 봄, 우리는 혁명의 퇴조, 혁명의 실패를 그의 어깨 위에 슬쩍 떠넘겨놓고, 그를 희생양 삼아 시대의 불온으로부터 도피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그해 봄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을 싸늘한 주검으로 내버려둔 채 비겁하게 침묵하며 일상의 안온으로 숨어들었는지 모른다.

살아남은 이들이 할 일은 많지 않다. 그들 이름 석자라도 기억하고 전하는 일 정도다. 얼마나 위안이 될지 알 순 없지만 조그마한 연민과 후회, 미안함을 담아 연대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일이다.

강기훈의 삶이 조금이라도 안온해지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무슨 거창한 이야기보다 한순간의 눈빛, 음률, 풍경이 더 값질 때가 많다. 세상은 각박하고 분투해야 하지만, 슬픔을 함께 나누고 아파하는 것도 값지다. 강기훈이 영화에서 말한 대로, 조금은 ‘하찮고 시시한’ 생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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