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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노량진의 ‘법과 밥’

등록 2018-11-07 17:40수정 2018-11-07 18:46

5일부터 물과 전기가 끊긴 옛 노량진수산시장(구시장·왼쪽)과, 냉동창고 자리에 지어진 신시장 내부.  연합뉴스
5일부터 물과 전기가 끊긴 옛 노량진수산시장(구시장·왼쪽)과, 냉동창고 자리에 지어진 신시장 내부. 연합뉴스
인천에서 실어 온 어물, 개성에서 들여온 인삼 같은 물산의 집결지. 상류의 한강진, 하류의 양화진과 더불어 한양도성으로 통하는 길목. 조선시대 노량진은 이런 경제적 의미를 지닌 곳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해서 군 주둔지 진(鎭)이 설치되기도 했다 한다.

1899년 9월 개통된 국내 첫 철도 경인선의 시발점이 노량진이었던 것 또한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을 터다. 인천 제물포로 이어진 경인선의 서울 쪽 끝이 경성역(서울역)까지 연장된 것은 이듬해였다. 한강을 가로지른 첫 다리 한강철교(1900년 개통), 배 없이 걸어서 한강을 건너갈 수 있게 한 첫 다리 한강인도교(1917년 개통), 정조대왕의 화성 행차 때 놓인 한강 배다리의 남쪽 끝도 노량진이었다.

교통의 요지이고, 유서 깊은 경제·상업 중심지였던 노량진에 수산시장이 들어선 것은 1971년 6월이었다. 현재 노량진수산시장의 주인은 수협중앙회다. 수협은 2002년 노량진수산시장㈜과 냉동창고를 인수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수도권 수산물 공급량의 40~5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요즘 노량진수산시장을 둘러싼 공기가 험악하다. 수협이 지난 5일 옛 노량진수산시장(구시장)으로 흐르는 물과 전기를 끊었다.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구시장 상인들을 ‘신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한 강경책이다. 신시장은 기존 냉동창고 자리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2016년 3월 문을 열었다. 현재 신시장에는 전체 상인 681명 중 435명만 입주해 있다고 한다. 나머지 246명은 구시장에 그대로 남아 버티고 있다. 이들은 신시장 쪽 임대료가 비싸고, 면적마저 좁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법(수협의 강제집행권)과 밥(상인들의 생존권)의 대결이다.

수협은 9일 오후 5시까지 옮기지 않으면 신시장의 나머지 공간을 일반인에게 배정하겠다며 구시장 상인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내놓은 상태다. 법과 밥이 충돌하는 시일이 길어지면서 또다른 밥(신시장 상인들의 영업)에도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싸움터로 여겨지는 곳에 손님들의 발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법과 밥의 ‘정치적 대립’ 대신 밥그릇을 키우는 ‘정책적 해법’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수협 쪽에서 시장 발전을 위한 기금을 내놓겠다는 뜻을 한때 밝힌 바 있다는데 이를 실마리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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