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연전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시작이 어떻든 복잡한 국제전 양상을 띤다. 미국 등 서방은 모든 전쟁과 관련돼 있으며, 중동 지역 강국들도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전쟁으로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나라 안팎의 분열을 심화해 갈등을 증폭하는 것도 동일하다.
미국은 이란 핵 협정에서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란 정권의 무릎을 꿇리거나 정권 교체를 통해 친미 체제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중동연전의 가장 나쁜 상황은 미국이 동맹국과 손잡고 이란을 공격하거나 이란에서 내전이 발발해 외세가 개입하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겪는 나라는 중동 지역의 예멘이다.
2015년부터 본격화한 내전으로 5만~6만명이 숨지고 200만명 넘게 삶의 터전을 잃었다. 19만명은 나라 밖으로 몸을 피했다. 2900만 인구의 4분의 3인 2200만명이 국제단체의 식량 지원에 의존하고, 이 가운데 800만명은 구호물자가 끊기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콜레라 등 전염병이 번져 100만명 이상이 감염됐다고 한다.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이 갑자기 평화협상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예멘 내부 세력들은 물론 관련국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 예멘은 남북이 나뉘어 있던 시절부터 반세기 이상 갖가지 형태의 내전에 시달려왔다.
북예멘의 왕정을 뒤엎고 공화정을 수립한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몇년 동안 공화파와 왕당파가 대립한다. 북쪽 국경에 접한 왕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왕당파를 지지하고, 아랍민족주의의 본거지인 이집트는 수만명의 병력까지 보내 공화파를 지원한다. 이 내전으로 70년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1939년부터 영국 식민지로 있던 남예멘이 1967년 독립하자 남북 예멘 사이에 국경분쟁이 생겨 1979년 무력충돌로 이어진다. 분쟁은 남예멘 안에서 노선 갈등과 내전을 야기해 수천명이 숨지거나 다친다.
독일 통일보다 몇달 이른 1990년 5월 남북 예멘은 평화통일을 선언한다. 예멘 현대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이다. 하지만 북예멘 주도 통일에 남예멘이 반발하면서 내전이 일어난다. 남예멘이 1994년 5월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북예멘은 곧 군사력을 동원해 점령하고, 이후 남예멘 쪽은 분리주의 운동으로 맞선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이후 동부와 남부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무장세력이 세력을 확보하자 정부군과 미군이 대응작전에 나선다. 여기에 더해 2004년부터 북예멘 지역에서 이슬람 시아파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시작된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는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북부 시아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 남부 분리주의 세력, 동부·남부 이슬람 무장세력이 각각 정부와 맞선다. 네개의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1978년부터 장기집권 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결국 2012년 물러난다.
지금 내전의 주역은 시아파 후티 반군과 정부군이다. 반군이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하자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연합군이 개입한다. 미국과 영국은 사우디 쪽에 무기와 장비를 지원한다. 이란도 반군 쪽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연합군은 최근 반군 장악 지역인 남서부 호데이다 항구를 봉쇄하고 병원·시장·통학버스 등에 공습을 가해 수백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호데이다는 민간인에게 전달되는 식량·의약품·연료의 80%가 하역되는 곳이다. 사우디의 무차별 ‘고사 작전’으로 인도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
■ 예멘 내전은 금세기 들어 무대를 달리하며 이어지는 ‘중동연전(連戰)’의 최신판이다.
시작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다. 이 전쟁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전쟁의 주 무대는 곧 이라크로 옮겨진다. 2003년 미국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라크전은 미군 주요 병력이 철수한 2011년 말까지 8년 이상 계속된다. 2011년에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내전이 벌어져 미국과 유럽이 반군 편에서 개입한다. 리비아는 아직 안정을 되찾지 못한 상태다. 2012년부터는 시리아가 전쟁의 새 무대가 된다. 이 전쟁의 와중에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서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2014년 출범하자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이슬람국가가 주요 근거지를 잃은 뒤로는 예멘 내전이 더 부각되고 있다.
중동연전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시작이 어떻든 복잡한 국제전 양상을 띤다. 미국 등 서방은 모든 전쟁과 관련돼 있으며, 중동 지역 강국들도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전쟁으로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나라 안팎의 분열을 심화해 갈등을 증폭하는 것도 동일하다.
연이은 전쟁은 대규모 난민을 만들어냈다. 시리아에서 490만명, 이라크에서 450만명, 아프간에서 270만명의 국내외 난민이 생겼다. 특히 유럽 대륙과 가까운 시리아에서 난민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유럽 난민위기’라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유럽 대륙에서 포퓰리즘과 극우 세력이 세를 키우고 있다. 리비아 내전은 유럽 난민위기의 또 다른 축이다. 지중해에 접한 리비아의 국가 체제가 무너지자 아래쪽 아프리카 나라의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는 새 통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진 나라들은 모두 중간 규모의 국력을 가진 점에서도 닮았다. 중동·북아프리카에서는 터키·사우디·이란·이집트·이스라엘이 강국 행세를 한다. 전쟁은 바로 아래 급의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인 이스라엘·사우디·터키·이집트를 통하거나 직접 개입한다.
■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남서쪽에서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접해 있어 사막이 많은 위쪽 사우디보다 비옥하다. 그래서 ‘예멘’은 ‘남쪽’ 또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는 뜻을 갖는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5배가 넘고 인구도 사우디와 맞먹는다. 지정학적 위치를 잘 활용해 번성한 역사도 있다. 지금은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석유·가스 등 자원이 빈약해 중동 최빈국으로 꼽힌다. 경제 규모는 사우디의 수십분의 1에 그친다.
예멘 내전은 중동 전체의 모순을 압축한 국제전이 됐다. 종파·종족 대립, 제국주의 대 반외세, 독재 대 민주, 이념·영토 갈등 등 오랫동안 중동 나라들을 괴롭혀온 모든 요소가 뒤섞여 있다. 국제적인 큰손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와 이란, 사우디·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축으로 패권 재편·강화를 꾀하는 미국이다.
이란은 예멘 북쪽 지역과 수도를 장악한 후티 반군을, 사우디는 정부군을, 역시 수니파인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와 협력하면서도 예멘 남부의 분리주의자를 지원한다. 사우디의 개입은 미국산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이 핵심이다. 후티 반군은 시아파 가운데 자이디파에 속한다. 이 종파의 교리는 수니파 쪽에 가깝다. 그런데도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 데는 사우디와 이란의 주도권 경쟁이 작용한다.
■ 중동연전은 기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새 전쟁이 시작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예멘 내전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음은 어딜까? 모든 징조는 인구가 8천만명이 넘는 이란을 가리킨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은 오래됐으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전면적이다. 사우디 위쪽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전을 일으킨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권력을 장악했다. 아래쪽 예멘에서도 시아파 반군의 공세가 거세다. 불안해하는 사우디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구세주나 다를 바 없다.
반이란을 중동 정책의 선두에 내세운 트럼프의 친이스라엘·사우디 행보는 과거 어느 미국 정부보다 분명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사우디 정부는 10년 동안 11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무기를 사기로 트럼프에게 약속했다. 사우디가 예멘 내전 개입을 강화하고, 자신과 이란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온 카타르와 지난해 단교하는 강수를 둔 것도 미국이라는 뒷배가 있어서다. 미국이 반이란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예멘 내전도 끝나기 어렵다.
미국은 2015년 7월 체결 이후 잘 굴러가던 이란 핵 협정에서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8월 1차 제재에 이어 5일부터 이란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등 모든 석유 관련 제품의 금수를 겨냥한 강력한 2차 제재가 시작됐다. 이란 정권의 무릎을 꿇리거나 정권 교체를 통해 친미 체제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중동연전의 가장 나쁜 상황은 미국이 동맹국과 손잡고 이란을 공격하거나 이란에서 내전이 발발해 외세가 개입하는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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