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 학교에 가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108계단을 기어오르거나, 칼바람에 베이며 자전거를 타거나, 온몸을 슬라임처럼 뭉개며 만원 버스를 탈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나의 등교법은 훨씬 복잡하다. 우선 집을 나와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용산역으로 간다. 케이티엑스(KTX)로 두시간 정도 달려 광주송정역에 내린다. 역 앞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하루 네번 있는 버스를 아슬아슬 갈아탄다. 마지막으로 농어촌버스를 타고 나비 농장을 지나면 학교가 나온다. 나는 이런 식으로 방방곡곡 백군데의 학교를 찾아갔다. 나는 원래 게으르고 멀미도 심해 멀리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6년 전에 청소년 책을 하나 낸 뒤, 지방 학교로부터 강연 초대를 받았다. 인생에 한두 번은 이런 일도 있어야지. 어린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굼뜬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을 탔는지, 이웃 학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그리고 소문의 행로가 그렇듯이 목적지는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읍면 단위로, 산골과 바닷가의 오지로 바뀌어갔다. 초대는 물론 감사하지만 문제가 있다. 나는 차가 없다. 모든 여정을 대중교통으로 소화해야 한다. 처음엔 적당히 거절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다녀온 학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이 일이 내게 ‘미션’ 같은 게 되었다. 어린 독자들에게 ‘교과서에 안 나오는 이상한 인생’을 보여주자는 사명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미션은 나만을 위한 게임이기도 하다. “대중교통, 어디까지 가봤니?” 극강의 오지 학교까지 찾아가 지도의 빈 곳을 지워나가자. 내 책은 ‘오늘 안 놀면, 내일은 놀고 싶어도 못 논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의 퀘스트는 한반도 곳곳에 있는 ‘공부벌레’라는 포켓몬을 잡는 거다. 한국 땅은 솔직히 좁다. 편도 4799㎞의 원정 경기를 뛰고 오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라면 콧방귀를 뀔 만하다. 최근엔 케이티엑스망으로 이동 시간도 훨씬 줄었다. 그리고 다녀보니 알겠는데, 전국 어디든 어떻게든 서울과 연결해놨다. 그럼에도 학교의 위치가 참 애매한 곳이 많다. 네군데 시와 읍의 중간에 있어,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어렵다든지. 분명히 버스 노선은 있지만, 배차가 하루에 두번밖에 없다든지. 의외로 경기도 지역에도 난코스가 많았다. 황량한 논밭 한복판에 아파트 단지를 세워두고, 젊은 부부들을 불러모은 곳들이다. 정 안 되면 장거리 택시를 타거나, 초청해준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땐 내 미션의 순수성을 해친 것 같아 찜찜하다. 지도, 기차, 버스 앱이 없었다면 진작에 포기했다. 그리고 나의 악착같은 검색력도 한몫했다. 강원도 인제의 산골 학교는 근처 부대에 면회를 다녀온 여성의 블로그를 참조했다. 폐교 직전의 충청도 학교는 동문회 커뮤니티에서 방법을 얻어냈다. 지리산 자락의 수련관은 둘레길 순례를 다녀온 산악회의 후기를 엿보았다. 그땐 등산객의 대절 버스를 이용해볼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의 기차, 버스, 정류장 덕후들이 올려놓은 꼼꼼한 정보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었다. 노곤한 몸을 기차에 싣고 돌아오며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학교가 있다. 내가 찾아가기 어려운 학교는 대부분 사람들이 줄어드는 곳이다. 전교생이 작년엔 14명, 올해는 10명. 그 학교의 아이는 하루 네번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읍내의 피시방에 간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곧바로 운전면허를 따서 동네를 벗어나려 할 거다. 아주 멀리 갔다 돌아오면, 학교는 이미 사라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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