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느슨한 연대라는 말의 ‘느슨함’이란 무슨 뜻일까. ‘자유로운’ 개인과 ‘각성한’ 개인은 같은가 다른가. 얼핏 보기에 다방 철학 같고 말 따먹기 같은 화두를 들고 우리는 사유했고,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모임을 가꿔나갔다. 지난 10월20일 노사모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자동이체(CMS)를 폐지하고 중앙의 신규회원을 더 이상 받지 않으며 대표일꾼 체제를 집단지도 체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2000년 7월22일 명계남을 초대 대표일꾼으로 선출한 이래 19년 동안 변화를 거듭해왔던 노사모를 초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일부 회원들에겐 해체에 버금가는 충격을 줄 수도 있는 변화다. 그 시작과 역사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이번 결정의 의미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은 지금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세계 질서가 요동치는 중에 평화냐 전쟁이냐 하는 기로에서 간신히 평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모든 곳에서 정체성의 위기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명목상 넘어서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역시 정치와 사회가 시장에 잠식되고 개인들의 삶에 기준이 되어주던 상식이 무너지는 중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태어난 것이 노사모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노사모라는 이념은 필연적이지만 그 응결점이 노무현이었던 것은 역사의 간지라 불러도 좋을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사모의 초심, 그것을 나를 비롯한 많은 노사모 회원들은 “자유로운 또는 각성한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라 부른다. 이 정의는 노사모 바깥에서 노사모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노사모 안에서 회원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자유’, 이 ‘각성’. 그리고 이 ‘느슨함’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노사모가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2000년 4월13일 밤 태동했던 노사모는 회원의 개념조차 명확히 없었던 모임이었다. 노무현을 사랑하고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의 의지를 지니고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노사모의 약속의 어느 한 항목에라도 해당되면 노사모였고, 게시판 글쓰기를 위해 사이트에 가입할 필요조차 없었던 느슨한 형태였다. 규약의 단순함 못지않게 초기 노사모의 행동규칙도 단순했는데, 한글 닉네임을 쓰고 서로 존댓말을 하며 직업이 뭔지 심지어 나이나 성별도 묻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업은 말 꺼낸 사람이 추진하고, 돕고 싶은 사람은 돕고 돕기 싫으면 입도 대지 않는다는 실천적인 규칙도 있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제반 규칙과 의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고, 그리하여 노사모에서 생겨나 정착하는 행동규칙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근대의 개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지닌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특별한 규율은 없지만 상식에 준해 각자 알아서 행동하되 내 행동의 과정과 결과를 내가 책임진다는, 밀의 자유론에 등장할 것 같은 개인들의 모임이었다. 너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나는 내 자유를 마음껏 누려도 되는데, 그 너의 범위와 나의 범위는 어느 정도 크기일까. 나아가 ‘자유’란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느슨한 연대라는 말의 ‘느슨함’이란 무슨 뜻일까. ‘자유로운’ 개인과 ‘각성한’ 개인은 같은가 다른가. 얼핏 보기에 다방 철학 같고 말 따먹기 같은 화두를 들고 우리는 사유했고,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모임을 가꿔나갔다. 이미 존재하는 담론이 아닌 보통사람다운 구어체 담론이 생겨났다. 부산에서 콩이면 광주에서도 콩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인식, 각자 자유의 영역을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관용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 이러한 바탕 위에, 밖에서 바라보기엔 노무현 대선운동조직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보기엔 새로운 근대적 시민으로 태어나려는 인큐베이터, 양육의 장소였던 것이 노사모였다. 시민의식의 사관학교, 노사모가 자기를 인식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자유를 지닌 개인으로서 시장과 자본에 먹혀버린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노사모의 이름으로, 노무현의 이름으로 무언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사모는 노사모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르는 길을 갔다. 몰랐기 때문에 관습의 관성에 자꾸만 이끌려 가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의 암묵적인 지혜, 사회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정치가 중심일 수밖에 없고, 새로운 형태라야만 새로운 정치를 담을 수 있고, 새로운 정치라야 살길이 보인다는 공통지혜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씨앗을 뿌리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다시 노사모를 생각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노사모도 노무현도 아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다른 주인들과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정신이 아닐까. 추억이 아닌 현재 시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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