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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몽골, 유라시아, 접속 / 신현준

등록 2018-10-26 19:02수정 2018-10-27 14:54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국제문화연구학과 교수·여행가

1년 전부터 몽골과 우연찮게 연(緣)이 닿았다. 한국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온 음악인 및 관계자와 친분이 생겼고, 몽골 음악을 연구한 학자 두 명과도 인터넷으로 연락이 닿았다. 무엇보다도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인디밴드 컬러스(the Colors)의 멤버들이 ‘몽골에 오면 음악인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겠다’는 친절을 보였고, 그 자리에서 만난 몽골인 유학생은 현지에서 통역을 해줄 친구까지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필드 트립이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어 일주일 동안 울란바토르에서 일곱 번의 인터뷰를 통해 도시문화의 현장을 조사할 수 있었다. 탁한 공기와 교통 체증 속에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인 ‘개발도상국 도시’의 전형처럼 보였던 도시의 깊은 층위에서는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초원을 찾아 게르에서 캠핑을 하지 못한 것은 후회스럽지 않았다.

몽골의 인디음악과 도시문화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놓을 것이다. 단, 많은 독자가 ‘몽골에도 인디음악 같은 게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몽골 사람들은 아직 말을 타고 다닐까?’라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에게 몽골이란 ‘동아시아에 속하는 나라들 가운데 가장 유럽화된 나라’보다는 ‘한국인과 생김새가 유사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에 가깝다. 단, 이때 ‘유럽’이란 러시아, 정확히 말하면 소련 시대의 러시아를 말하는데, 근대 이후 몽골에 대한 러시아의 오랜 영향, 지금도 남아 있는 몽골인의 ‘친러혐중’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유럽, 몽골은 아시아’라기보다는, 러시아도 몽골도 유라시아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의 몽골 체류는 ‘동아시아’라는 관념이 깨지고 ‘유라시아’라는 관념을 확인하는 신기한 경험이 되었다. 지난달 있었던 한 심포지엄의 토론을 감히 평가하자면, 나는 최원식의 ‘동아시아론’보다는 이병한의 ‘유라시아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대륙 반대편에서 포르투갈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브루누 마상이스(Bruno Macaes)가 올해 초 <유라시아의 여명>(The Dawn of Eurasia)을 저술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분리하는 장벽은 단지 (유럽인의) 경건한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소개하는 것은 사족이다.

이런 담론들은 너무 거대해서 감당하기 힘들다. ‘유라시아’에 대한 논의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나 미국의 다대다로(多帶多路) 등의 국제정치학으로 자동연결하는 것은 너무 그럴듯해서 오히려 통속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라시아라는 새로운 구상을 어떻게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감각할 것인가’일진대, 그 점에서 몽골은 특별하다. 외국 식당의 30%가 한국 식당인 나라, 버스 대부분이 현대와 기아에서 만든 중고차인 나라, 한국에 체류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나라였다. 칭기즈칸부터 보그드칸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몽골은 거기 그렇게 떡 버티고 있으면서 한국을 유라시아로 ‘안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지랖을 부렸다. ‘어번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일종의 ‘운동’을 한다는 친구가 중국 광저우를 방문한다길래, 그곳에서 공유공간을 운영하는 친구들을 연결해주었다. 이 네트워킹은 성공적일까. 그렇든 말든, 그동안 나는 제국(아니면 그저 ‘대국’)의 중심들을 우회해서 맺어지는 접속의 선(線)을 ‘아시아’라고 부르려고 애써왔는데, 이제는 ‘유라시아’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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