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홍세화 칼럼] 민주공화국의 학교를 위하여(2)

등록 2018-10-25 18:23수정 2018-10-26 13:33

70년 적폐가 다른 사회부문보다 더 심하게 쌓여 무척 어려운 이 과제를 풀려면 교육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세력과 공조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들을 배제한 채 사익추구집단의 열성에 휘둘려 단기적 처방을 내리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이달 초 유은혜 신임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은 취임 일성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관련하여 자신의 큰 그림을 펼치거나 전교조를 공교육 정상화의 주요 파트너로 하기 위해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를 고용노동부에 요청하는 대신, 유치원과 초등 1~2학년의 방과 후 영어교육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주일 전에 신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자리 문제 해결과 노동존중사회 실현에 역점을 두겠다”며 “우리나라 노동권을 국제수준으로 신장시키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말의 성찬을 비웃는다. 5년 전 박근혜 정권에 의해 조합원 중 9명의 해직자가 있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교조는 문재인 정권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

유 장관은 유치원과 초등 1~2학년의 방과 후 영어교육 허용을 과도한 사교육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초등 3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교육 과정을 위반하는 선행학습을 정부가 앞장서서 공식화한 행위이기도 하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로 다시금 드러났듯이, 공공성의 실현 현장이며 배움터가 되어야 할 교육현장이 사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이익은 사유화, 손해는 사회화”라는 신자유주의의 요령처럼, 교육의 공공성은 오로지 국가 지원금을 받을 때만 적용되고 반교육적 경쟁의 아수라장이 된 게 오래전에 고착된 현실이라면, 이런 현실이 아닌 교육 공공성이라는 기본원칙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70년 적폐가 다른 사회부문보다 더 심하게 쌓여 무척 어려운 이 과제를 풀려면 교육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세력과 공조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들을 배제한 채 사익추구집단의 열성에 휘둘려 단기적 처방을 내리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에 교육문화수석을 두지 않은 문재인 정권에 공교육 정상화의 의지와 이를 관철하기 위한 사령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품는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누차 강조했듯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공교육의 일차적 소명은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형성하는 데 있다. 그리고 민주시민의 요체는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에 있다. 이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동선·공익을 목표로 하는 사회로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라는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개념 규정에 따른 것이다. 또 앞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갈 구성원들에게 자본주의에 관한 교육, 특히 노동인권 교육은 주체성과 비판성뿐만 아니라 연대성 함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주체성 없는 자유로운 시민은 형용모순이고, 연대성 없이 공동선·공익을 추구할 수 없으며, 비판성이 없으면 법의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적 권력과 금력이 지배하게 된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은 민주적 공간인 학교에서 이 세 가지 요체를 함께 배우고 익힌 다음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사회에서 자기 직분을 가져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공교육이 경쟁지상주의에 압도됨으로써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은 형성하지 않은 채 기능적인 능력만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과정이 돼버렸다는 데 있다. 간디는 일찍이 7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을 꼽았는데, 우리 공교육은 이들 중 특히 ‘인격 없는 지식’과 ‘인간성 없는 과학’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우리 교육현장은 배움터가 아니라 경쟁의 장이다. 아무에게나 물어보자. 학교에 왜 가냐고?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사람 누구이며,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여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을 사람 누구인가? 이 경쟁의 과정에서 인격이나 인간성은 설자리가 없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수능 상대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주장하는 게 최근의 민심 동향이라고 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권이 교육 공약을 후퇴시킨 이유라고도 한다. 그러나 민심을 핑계로 공약을 후퇴시키기 전에 설득을 시도하는 게 ‘원칙 있는 정치’의 지도자다운 모습이다.

그러면 수능은 공정한가? 공정하다면 어떻게 공정한가? 석차와 등급을 주기 위해 이미 학문을 왜곡했는데, 왜곡한 학문 위에 공정성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잠시 생각해보자. 학생의 국어능력, 사회를 보는 눈, 역사를 보는 안목을 어떻게 평가하여 석차와 등급을 정확히 매길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 학생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뜨는 대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참고사항을 암기하는 데서 멈추고,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대신 그것을 위한 참고사항을 암기하는 데서 멈춘다. 노동자로 살아갈 구성원으로서 모의 노사협의를 하는 등 토론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인식하는 기회를 갖는 대신 객관적 사실을 숙지하는 것에서 멈춘다. 왜냐하면 참고사항이나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암기 여부로만 석차와 등급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식암기 위주 교육으로는 학생 각자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주체성),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비판성), 이웃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 더불어 사는(연대성) 민주시민을 형성할 수 없다.

그 대신 형성하는 게 있다. 좋은 학벌을 획득한 사회구성원들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로서 특권의식과 그때까지 처들인 사교육비에 대한 보상의식을 가진다면, 그렇지 못한 구성원들은 패배의식을 내면화하고 자긍심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운 좋게 머리 좋고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연대성이나 공감능력 없이 사회 귀족이 되어 군림할 때, 운 나쁘게 암기능력 떨어지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상징폭력의 희생물이 되어 지배당하는 것이, 이른바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경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는 결과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각 사회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개인적 가치를 성숙시키기보다는 권력에 기대거나 집단이기주의에 숨는 경향이 강한데, 패거리주의에 비해 주체성과 비판성이 부족해 이런 경향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학업 성적이 좋아 입신출세하여 사법부 수장까지 오른 양승태나 30대에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던 김기춘 같은 인물의 지난 행적을 보라.

국공립대를 통합네트워크화하고 이를 사립대에도 개방함으로써 대학서열화를 극복하여 공교육 정상화를 다지는 게 우리의 장기적 과제라면, 단기적 과제는 학종에서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학부모의 경제력에 크게 의존하는 비교과 영역을 없애고 지식암기 중심의 교실을 토론·실습·체험 중심으로 바꾸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학생의 인격이나 인간성을 함양하는 계기가 조금이라도 열릴 수 있다. 또 학업 성적이 뒤떨어지는 학생을 “너는 9등급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지적 인종주의’의 반교육적, 반인권적 행태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이란 출신 친구가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연대활동을 열심히 펼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 친구 관계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방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중학생들에 비해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난민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인격과 인간성, 그리고 연대성이 비어 있는 우리 교육의 모습이 반사되지 않는가.

민주공화국의 학교를 위하여(1)은 2017년 6월2일치 홍세화 칼럼에 실렸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1.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중국은 ‘윤석열의 전쟁’을 우려하고 있었다 2.

중국은 ‘윤석열의 전쟁’을 우려하고 있었다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3.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4.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5.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