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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저출생’으로는 ‘저출산’ 못 막는다 / 최슬기

등록 2018-10-24 18:16수정 2018-10-24 19:00

최슬기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성차별적 언어문화는 성평등하게 바뀌어야 한다. 유모차는 유아차로 부르는 게 좋겠다. 아이를 태우는 수레를 뜻하는 유모차는 마치 여성(모)만이 끄는 수레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저출산도 저출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저출산과 저출생은 같은 대상을 뉘앙스만 다르게 표현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한국인구학회에서 편찬한 <인구대사전>에 따르면, 출산력은 생물학적 임신능력을 의미하는 가임력과는 다른 개념이다. 출산력은 사회적 요인들을 포함해서 실제 어느 정도 아이가 태어났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출산력은 젊은 세대가 보통 몇명의 자녀를 출산하였는지를 나타낼 때에는 출산율로, 한 사회 전체에서 몇명의 아이가 태어났는지에 대하여 나타낼 때에는 출생률로 구분해서 측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어 부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두 용어 간 의미 차이에 주목한 것이라고 본다. 저출산은 여성을 중심으로, 저출생은 아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용어라는 것이다. 마치 유모차와 유아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미 차이는 그보다 더 크다. 우선 출산율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용어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자료 수집의 편의상 여성을 중심으로 출산율을 계산한다. 하지만 출산율은 남성을 대상으로도 산출이 가능하다. 젠더 측면에서 출산이란 용어는 이를 여성만의 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이지 지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지점은 따로 있다. 출산율은 젊은 세대가 몇명의 자녀를 낳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반면, 출생률에는 한가지 요인이 더 추가된다. 그것은 젊은 세대의 인구 규모다. 즉, 젊은이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지 않아도, 독박육아나 경력단절이 깨트려지지 않아도 젊은 세대의 규모가 늘면 출생아 수가 늘어나고, 출생률은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젊은 세대의 규모가 줄어들면 출생률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가 아이를 몇이나 낳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출생률이 아닌 출산율을 사용해야 한다.

사망력의 경우도 비슷하다. 전체 인구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멕시코가 미국보다 더 낮은 수치를 보인다. 멕시코의 의료기술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기대수명은 미국이 더 길다. 멕시코보다 미국에 나이 든 사람이 많아서 사망자 수가 더 많을 뿐이다. 인구구조가 영향을 준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의 사망력 수준을 평가할 때에는 인구구조의 영향력이 배제된 지표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출산력 수준을 평가할 때에는 출생률(조출생률)이 아니라, 인구구조의 영향력이 배제된 출산율(합계출산율)을 사용해야 한다.

2016년 4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가 2017년 35만여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젊은이들이 출산하기 더 어려운 사회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의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인가? 출생률로만 접근하면 이런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필자의 계산에 따르면, 출생아 수 감소 중 20%는 가임기 여성 인구가 줄어서였고, 나머지 80%는 출산율 하락 탓이었다.

저출산 정책의 효과에 대한 비판이 많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만큼 출산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정책을 수립하려면 정확한 현실인식과 개별 정책에 대한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출생이란 용어는 이러한 방향과 동떨어져 있다. 정확한 자를 들고 옷을 만들어야지 눈을 감고 작업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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