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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물러남이 없나니… / 오윤주

등록 2018-10-23 18:05수정 2018-10-24 16:15

오윤주
전국2팀 기자

지금은 철도시대다. 지난달 무명 의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막을 내렸다. 끝 무렵 유진 초이(이병헌)가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발 물러나니…”란 말을 남기고 강렬하게 숨진 열차 장면이 가슴에 남았다. 경성(서울)발 평양행. 그땐 햇빛처럼 유유히 평양을 오갔다.

남북화해 시대, 열차가 단연 화제다. 남북은 지난 15일 고위급 회담에서 다음달 말이나 12월 초 철도 연결·현대화 착공식을 하기로 합의했다. 경의선은 이달 말, 동해선은 다음달 초 현지 공동조사를 할 참이다. 부산, 광주에서 단박에 평양에 가고, 또 유라시아 대륙까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조금씩 보인다. 시민들은 벌써 유라시아 열차 가상 예매로 기대감을 달랠 정도다.

지금은 신경망처럼 도시 곳곳에 철로가 놓였지만, 초기 도시들은 철도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1905년 일제가 강제 부설한 경부선만 해도 충청을 상징하던 충주·청주, 경상도의 한 축이던 상주, 충남 공주 등 큰 도시를 모두 외면했다. 소음·번잡 등을 이유로 편의성을 간과했고, 철도는 외곽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철로가 놓이고 역이 선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1930년대 동급(면)이던 대전과 상주가 대조적이다. 역이 놓인 대전은 인구 150만명대 광역시로 도약했지만, 상주는 10만명 선이 간당간당한다.

대전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본 이웃 충북은 고속철도(KTX)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1989년 민관이 나서 충남을 관통하려던 경부고속철도를 유치한 데 이어 전국 유일의 경부·호남 분기역도 오송으로 끌어왔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낳은 세종시의 관문 구실을 한다는 명분이 컸고, 세종도 굳이 도심에 역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시가 급성장하면서 역 분쟁에 휘말렸다. 이른바 고속철도 세종역 신설 논란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세종 지역구)가 불을 댕겼고, 행정도시를 설계한 이춘희 세종시장도 가세했다.

주변 오송, 공주역 위축을 우려한 충북, 공주 등의 반대에도 세종역 논란은 확산하고 있다. 상생과 공조로 세종시를 함께 지켜냈던 충청권 자치단체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국회 국정감사가 이를 놓칠 리 없다. 국회는 충청권 국정감사에서 세종역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몇몇 의원은 정부세종청사 접근성, 호남권 시간 단축 등을 이유로 세종역에 힘을 보탠다.

아이러니하게 세종역을 반대하는 충북의 우군은 자유한국당이다. 지난 16일 충북도 국정감사에 나선 국토교통위원회 한국당 의원들은 세종역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고, 국토부에 “정치적 이유로 세종역을 신설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이시종 지사에겐 당 대표에게 굴복하지 말라며 힘을 실어줬다. 이런 분위기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2일 세종, 23일 충북 국감에서도 재연됐다.

경북 구미와 김천도 요즘 고속철도역 갈등을 빚는다. 김천혁신도시에 있는 기존 역이 불편하다며 구미가 남부내륙철도 건설 때 구미역 설치를 추진하자, 김천이 반발한다. 서로 역이 가져온 접근성·편리성 등을 곁에 두려는 이유다.

한때 동지였던 세종과 청주, 구미와 김천은 역 설치를 놓고 마찰할 뿐 상생과 협력을 떠올리지 않는다. 애초 균형과 분권·분산을 위해 불편을 무릅쓰고 행정도시·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이제 편의만 내세운다. 정치권의 다툼이야 예견된 일이지만 정부조차 강 건너 불구경이다. 누구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철로처럼 평행선이다. 다시 유진 초이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한발 물러나니….”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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