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논설위원
1971년 어느 날 밤. 서울 주요 대학 도시계획 관련 학과 교수들 집으로 헌병대가 들이닥쳤다. 영문도 모르고 이끌려 간 곳은 시내 한 호텔이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청와대 비서관은 1주일 안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설정해달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그해 1월 개발제한구역 신설 방침을 담은 도시계획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였다.
그린벨트 설정 작업 또한 거칠었다. 서울·경기 일대를 보여주는 2만5천분의 1 지도에서 서울시청 자리 15㎞ 밖에 2~10㎞ 폭의 동그란 띠를 색연필로 그리는 식이었다. 이렇게 서울·경기에서 처음 지정된 그린벨트는 1977년까지 전국으로 퍼졌고 1999년까지 고스란히 보존됐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값 대책의 하나로 그린벨트를 풀어 새 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 대해 서울시가 반대 뜻을 내보이며 맞서 있다. 지난 9월 그린벨트를 포함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염곡동 일대 모습. <연합뉴스>
첫 해제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에야 이뤄졌다. 그 뒤에도 여러 명목으로 풀려 1999년 5397㎢에서 3854㎢(2016년 기준)로 30%가량 줄었다. 올해 들어 그린벨트 해제 주장을 다시 끌어낸 빌미는 서울 집값 급등세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주변 그린벨트를 풀어 새도시 4~5곳을 개발하겠다는 집값 대책을 밝힌 건 지난달 21일이었다. 국토부의 이런 방침은 서울시의 반대에 막혀 있다. 박원순 시장은 22일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해제 반대 뜻을 거듭 밝혔고, 환경단체들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그린벨트 해제 주장을 눈앞의 문제만 보는 섣부른 개발론으로 몰기는 어려워 보인다. 3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다. 그린벨트 5등급 중 아래쪽 3등급 이하는 환경적 보존 가치가 낮아 필요한 절차를 거쳐 풀 수 있게 돼 있다. 서울의 경우 전체 그린벨트 중 3등급 이하가 21%에 이른다고 한다. 경기는 27%, 인천은 58%에 이른다. 1999년 뒤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야금야금 갉아 먹힌 탓이다. 이런 지역에는 화훼 농가나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선 비닐하우스가 빽빽해 그린벨트가 아니라 ‘화이트벨트’라는 조롱도 나온다.
그린벨트 보존 논리를 마냥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미 망가졌으니 풀자는 논리의 위험성 탓이다. 엉성한 관리 탓에 헐렸다면 단속 고삐를 조이고 복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는 여기에 3~5등급 그린벨트 안에도 보존해야 할 비오톱(biotope·생물서식공간, 서울에만 적용하며 5개 등급) 1~2등급지가 다수 분포해 있다고 밝힌다. 2000년을 기점으로 그린벨트 해제는 가능해도 신규 지정은 사실상 할 수 없다는 ‘불가역적 속성’도 생각해야 한다.
해제와 보존이란 이분법 구도로는 그린벨트 현안을 풀기 어려워 보인다. 해제한 지역에 아파트를 지었지만, 처음에 겨냥했던 정책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앞선 정권의 사례들이 있다. 그렇다고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곳이 많은 지금 그대로 두는 게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환경단체를 포함해 민관이 함께 실태 조사를 벌여 지역별로 보존 또는 개발 쪽으로 갈래를 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상에 관한 정보의 공유, 공감대 없이는 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토부, 서울시, 환경단체들이 각각 그린벨트 조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니 백지상태로 시작하는 막막한 작업은 아닐 터다. 실태를 본 뒤, 되돌리기엔 늦었다고 판단된다면 개발이익을 공적으로 거둔다는 전제로 개발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관리해 시민들의 휴식처 따위로 활용하자는 제안에 귀를 기울일 만해 보인다. 다행히 서울 집값이 급등세를 벗어나 논의를 차분하게 이어갈 바탕도 마련돼 있으니 말이다.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