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시대 인기 기업 공채엔 수만장이 넘는 지원서가 몰린다. 블라인드 채용이 대세라, 입사원서에서 성별·나이·학교가 드러나지 않는다. 학점 커트라인과 줄세우기를 통해 대상자를 추려오던 관행이 사라져 산더미 같은 자기소개서를 읽어야 한다. 국내 기업 수백곳은 인공지능 채용을 도입해, 서류전형 단계에서 자기소개서 표절 여부와 신뢰성, 직무적합도 평가를 기계에 맡기고 있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올해 하반기 채용에 인공지능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이 속속 늘고 있다. 피시방이나 집에서 프로그램에 접속해 모니터 속 인공지능 면접관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은 사람 면접관처럼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데 60초 생각한 뒤 60초 안에 답변해야 한다. 60분 면접 뒤에 인공지능은 지원자의 맥박, 눈동자, 표정 등 수십가지 신호를 분석해 점수를 매긴다. 기업은 효율성과 속도에 만족하고 지원자들은 공정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인공지능 면접 대비 학습을 추가했다. 튜링테스트가 사람 면접관 앞에서 인공지능들이 경쟁하게 했다면, 인공지능 면접은 기계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인간들의 ‘역튜링테스트’인 셈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10년간 인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채용시스템을 개발했으나 폐기했다. 인공지능 채용시스템은 지원자가 ‘여성’인 경우 감점을 주고 대부분 남성을 추천했다. 아마존은 ‘여성’에게 감점을 주지 않게 프로그램을 개선했지만 미지의 차별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 폐기를 결정했다.
구글 광고는 남성들에게는 프로그래머 등 고소득 구인광고를 보여줬지만 여성에겐 소득 낮은 일자리광고를 노출했다. 라타냐 스위니 하버드대 교수는 구글에서 흑인들이 많이 쓰는 이름을 검색하면 그렇지 않은 이름에 비해 ‘범죄기록 삭제’ 광고가 25%나 많이 노출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기성의 차별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고교 시험, 대학 입학, 채용, 재판 등 사람들이 공정성을 기대하는 영역에서 담당자들의 조작과 불법거래가 드러나며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 “차라리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인공지능도 기존 데이터와 관행을 반영할 따름이다. 불신과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현실을 통해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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