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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도시어부’와 방송의 품격 / 이재명

등록 2018-10-14 17:48수정 2018-10-15 11:24

이재명
디지털부문장 겸 에디터

모처럼 들른 낚시가게에서 부쩍 늘어난 여성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도시어부>를 보더니 낚시를 가자고 조르는데 적당한 장비 좀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손님이 한둘이 아닌 듯 낚시가게 주인은 “뭘 잡으실 건데요?”라고 묻더니 익숙하게 낚시 장비를 꺼내놨다. 낚시점을 찾는 꾼들의 발걸음도 예전보다 잦아졌단다. 그제야 홈쇼핑 채널에 낚시용품이 등장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행에 민감한 홈쇼핑이 관련 상품을 내놓는 걸 보면 <도시어부>발 낚시 열풍이 꽤 뜨거운 듯하다.

낚시인들이 흔히 말하는 즐거움이 손맛, 찌맛과 함께 낚은 물고기를 먹는 기쁨이다. 낚시가 취미인 내게도 더러 “잡은 물고기를 먹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곧바로 놔준다고 하면 “그럴 거면 낚시는 왜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물고기 괴롭히는 걸 즐길 거리로 삼는 괴팍한 인간이라는 핀잔이기도 하다. 억울하긴 해도 꼭 틀린 말은 아니니 멋쩍은 웃음으로 넘기고 만다. 낚시꾼 대부분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남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거나 자신의 최대어 기록을 경신할 때의 짜릿함도 낚시의 매력 중 하나다. <도시어부>는 이런 요소를 두루 버무린 프로그램이다.

반면 누군가는 낚시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 데 만족한다. 이들은 홀로여도, 빈손이어도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는 법이 없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도 등장한 플라이낚시는 자연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낚시다. 낚시 시작 전 주변을 관찰해 물고기에게 익숙한 먹잇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렇게 먹이 곤충과 가장 가까운 모양의 인조미끼를 직접 만들어 쓴다. 물고기처럼 생각하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느끼는 쾌감은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낚시하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듯 낚시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도 제각각이어서 우열이나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다.

취미로서의 낚시는 누구나 언제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낚시꾼들은 “그물로는 못 해도 낚시로는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긴 그물코는 작은 물고기가 빠져나갈 수 있지만 미끼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물고기는 구워 먹고 큰 물고기는 회로 먹는 ‘먹방 낚시’가 대세가 되면, 오늘 내 자리에서 내일 다른 이가 낚시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낚시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물고기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다. 특히 미늘은 물고기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낚싯바늘 끝에 가시랭이 모양을 한 갈고리로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안된 미늘은 그 자체로 물고기 입 주변에 큰 상처를 남기지만 바늘을 빼는 과정에서 아가미, 눈, 혈관 등까지 다치게 한다. 이 때문에 미늘 있는 바늘을 아예 금지하는 나라도 많다. 이런 바늘을 구하기 힘들면 펜치 같은 공구로 미늘을 꾹 눌러 사용해도 된다.

오래된 낚시꾼들조차 소홀히 하는 게 뜰채다. 물고기를 물 밖으로 꺼낼 때 물고기의 체중은 낚싯바늘이 걸린 주둥이에 집중된다. 종종 큰 물고기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입 주변이 찢어지기도 한다. 뜰채는 잡은 물고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 주로 쓰이지만 그보다는 물고기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비다. 예능프로인 <도시어부>가 낚시의 모든 걸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낚시 인구를 늘리는 기폭제가 됐고 그만큼 낚시 문화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가능한 한 미늘 없는 바늘을 쓰고 작은 물고기라도 뜰채를 사용하는 세심함, 필요한 먹거리가 아니면 바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배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방송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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