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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불가능한 ‘사법부 독립’ / 김남일

등록 2018-10-09 18:33수정 2018-10-10 14:20

김남일
법조팀장

외부에서 지속해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으면 입력보다 더 큰 출력을 얻을 수 없다.

영구기관, 이름도 매혹적인 무한동력장치 특허소송에서 법원이 과학에 기대 내린 불허 판단이다. 무한동력장치는 열역학 제1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에 반한다. 특허청은 해마다 쏟아지는 ‘실현 불가능한 꿈’에 지쳤다. 이런 건 신청도 하지 말라며 도면을 첨부한 ‘불가 예시’까지 만들었다. 수압 스프링 회전기 관성 부력 유체압 중력 탄성력 전자기 정전기 등을 이용한 무한동력장치는 “역사상 최초 영구기관 설계자로 알려진 아르키메데스 이후 실패한 꿈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특허출원은 멈추지 않는다. ‘법칙에도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발명가의 수십년 끈기와 순수한 탐구심까지 타박할 순 없다. 영구기관이 동서고금 수천년 사람을 미혹시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꿈꾼다. 빠져들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영구기관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헌법 법률 양심이라는 삼위일체를 무한동력으로 삼는 법원이다. 일단 법관이 되는 순간 외부의 어떤 힘도 배격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끊임없이 독립해 작동한다는, 무한동력인간 특허장을 받는다.

특허장의 힘은 놀랍다. 은연중 벼르고 왔을, 그 자신 법률가인 문재인 대통령도, 부지불식 무한동력 신봉자로 만든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 70주년 기념식에서다. 한 고위 법조인은 “대통령이 그날 다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고 했다. “그럼 입법부 독립, 행정부 독립도 가능한가? 사법부 독립이 아닌 ‘재판 독립’이 맞는 표현이다.”

재판은 독립하되 책임은 져야 한다. 자신을 무한동력인간이라 믿는 법관이 한 판결을 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뇌물 70억원이 인정되고도 풀려났다. 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재벌그룹 총수 일가라는 점, 재판 결과가 기업이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되고 고려해야 할 사정도 아니다.” 그러고는 시원하게 풀어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풀어줄 때와 동일한 초식이다.

사법농단 영장 심사는 어떤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재판 개입하다 이 지경이 됐다, 앞으로 그런 거 하지 말자고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영장 심사는 존중돼야 한다. 일견 그럴듯한데, 법관 서로가 서로에게 내주는 무한동력 특허장이 어느덧 면죄부다. 과거 몇 차례 사법파동의 자랑스러운 기억이 스스로를 무한동력인간, 심판하는 자동기계로 착각하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공기 저항, 기계적 마찰, 저항에 따른 열 손실 등이 없을 때나 가능한 영구운동을 영구기관, 무한동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영원히 움직일 것 같은 진자는 ‘좌우’로 흔들리는 것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정권이, 대법원장이 바뀔 때마다 흔들렸던 법원의 모습이 딱 그렇다. 스스로 뽑은 대통령도 탄핵한 국민이다. 공부 잘해서 된 법관 탄핵이 그리 어려울까. 외부의 에너지가 외압이 아닌 힘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됐다. 멜트다운은 없다며 무소불위 무한권력을 휘두르던 검찰도 이제는 ‘방폐장’ 부지를 알아보는 신세다.

허황한 연금술은 화학이 됐다. 불가능한 영구기관의 꿈은 열역학을 발전시켰다. ‘사법부 독립’ 의지는 무엇에 기여할까. 순수한 열정에서 그치지 않으면 사달이 난다. 무한동력장치 개발에 성공했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일이 종종 있다. 법원은 여기에 사기죄를 물어왔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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