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지 17돌이 됐다. 9·11 동시테러 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첫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는 ‘아프간 내 전쟁’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집권세력이던 탈레반을 끌어내리고 두달 만에 승리를 선언했으나, 이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새 전략은 “적을 공격하고, 아이에스를 없애며, 알카에다를 으스러뜨리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며,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중단시키는 것”을 승리라고 했다. 핵심은 ‘적에 대한 공격’이다. 곧 ‘지지 않고 적을 공격하면 이기는 것’으로 승리의 정의를 바꿨다.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죠. 부패하고 억압적인 모습은 똑같습니다. 탈레반이 한쪽 뺨을 치면, 정부가 다른 뺨을 치죠. 양쪽 지지자가 얼마나 되느냐고요? 각각 전체 인구의 10%나 될까요. 정부는 지역 중심지들과 군사시설을 장악하고 있고, 그 바깥에선 탈레반이 강합니다. 양쪽이 손을 잡을 가능성요? 그렇게 되기도 어렵지만, 손을 잡더라도 잘 굴러갈지 의문입니다. 미국은 철저하게 정부 편입니다.”(아프가니스탄의 한 지방 유력자)
“현지에서 병력을 빼내면, 또 다른 이슬람국가(IS)식의 격변이 있을 겁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이라크에서 아이에스가 등장해 벌어졌던 사태가 아프간에서 되풀이되는 거죠.”(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아프간 정책 검토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7일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지 17돌이 됐다. 9·11 동시테러 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첫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는 ‘아프간 내 전쟁’(War in Afghanistan)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집권세력이던 탈레반을 끌어내리고 두달 만에 승리를 선언했으나, 이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앞서 소련의 침공으로 10년 동안(1979~89년) 이어진 아프간 전쟁(Afghanistan War)과 그 뒤 내전까지 합치면 아프간 사람들은 40년 동안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6배가 넘는 땅에 사는 3600여만 주민의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바뀐 것은 작전 이름이다. 부시가 붙인 ‘항구적 자유’는 2014년 12월 ‘자유의 초병’이 됐다. 오바마는 이때 전쟁 종료를 선언하고 철군을 발표했다. 트럼프도 선거 유세 때는 즉시 철군을 주장했으나 지난해 방침을 바꿔 병력 4천명을 더 보냈다. 지금 아프간에는 미군 1만5천명이 주둔한다. 철군은 정해진 시한 없이 ‘상황에 따라’ 검토된다. 미국은 이달부터 시작하는 2019회계연도 예산 463억달러를 합해 이제까지 이 전쟁에 9천억달러(약 1천조원) 가까이 썼다. 해마다 들어가는 돈이 우리나라의 국방비와 비슷하고, 아프간 국내총생산(지난해 216억달러)의 2배가 넘는다.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만명이 넘는다(2016년 말 기준). 탈레반 등 무장조직이 4만2100명으로 가장 많지만, 아프간 군·경찰(3만470명)과 민간인(3만1419명)도 그에 못지않다. 미군은 2371명, 국제연합군은 1136명이 숨졌다. 고향을 잃고 나라 안팎을 떠도는 난민도 수백만명에 이른다.
미국은 자신이 지원하는 아프간 정부가 전체 인구의 65%를 관할한다고 말한다. 국토 면적으로 보면 거꾸로 반군의 주력인 탈레반이 44~61%를 장악하고 있으며 정부는 16%에 그친다. 미국의 물질적 지원은 오히려 정부 인사들의 부패를 더 심하게 만들어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앞세운 탈레반이 주민에게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내세우는 핵심 성과는 테러 세력의 아프간 내 기반을 크게 약화했다는 것이지만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프간 공격이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을 위한 길닦이용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1조7천억달러가 들어간 이라크 전쟁은 결국 아이에스 등장을 비롯해 중동 정세의 대혼란을 낳았다. 아프간 상황 역시 복잡해져, 지금 아이에스 지부를 포함해 20개 이상의 테러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고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계속 줄고 있다.
미국은 전쟁 목표가 테러범 섬멸이라고 밝혀왔다. 아프간 정부를 지원하는 이유도 정부를 안정시켜 테러범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가 이전 정권을 비판하면서 내세운 새 전략도 별로 다를 게 없다. 탈레반에 우호적인 듯한 이웃 나라 파키스탄을 강하게 비판하고 인도·중국·러시아 등 관련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통상 자신이 일으킨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테러범이 적일 경우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항복을 받아내야 이기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패배다. 트럼프 정부의 새 전략은 “적을 공격하고, 아이에스를 없애며, 알카에다를 으스러뜨리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며,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중단시키는 것”을 승리라고 했다. 핵심은 ‘적에 대한 공격’이다. 곧 ‘지지 않고 적을 공격하면 이기는 것’으로 승리의 정의를 바꿨다.
아프간 정책은 현지 사령관이 주도해왔다. 최근 17번째 사령관이 부임할 정도로 순환근무가 잦은데다 정치·외교·문화적인 시야가 약해 군사작전에 치중했을 뿐 전체 상황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뚜렷했다. 아프간은 드론을 이용한 무인 공격의 최대 시험장이기도 하다.
미군이 점령군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계속 주둔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철수하면 사태가 더 나빠질 거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몇달 전부터 평화협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관리가 탈레반 쪽과 직접 접촉하고 있으나 큰 진전은 없다.
■ 지구촌 여론을 보면 아프간 침공과 미군 주둔을 꾸준하게 지지한 나라는 이스라엘이 거의 유일하다.
9·11 테러 직후엔 수십개 나라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인도에서만 침공 찬성 여론이 높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압도적으로 ‘군사행동 대신 테러범의 추방과 기소’를 지지했다. 탈레반 쪽도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 등을 제3국에 인도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막상 미국이 공습을 시작하자 찬성국과 반대국이 반반 정도로 갈렸다. 영국·독일·프랑스·캐나다 등 서구 나라 다수는 찬성 쪽이었고, 한국·중국·터키·스페인 등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2007년이 되자 아프간 내 외국군 주둔에 찬성하는 나라는 미국·이스라엘 등 몇개로 줄었고, 2009년에는 미국에서도 병력 철수 여론이 더 많아졌다.
이 전쟁을 평가하려면 아프간 침공 그 자체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큰 맥락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침공은 일방적이긴 했으나 9·11 테러 주도 세력에 대한 응징이라는 상당한 명분이 있었다. 이라크 침공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알카에다 축출에 집중했다면 몇해 안에 목표를 이뤘을 가능성이 적잖다. 미국과 아프간 모두 지금보다 나은 상황에서 테러 대응 등 여러 현안을 두고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테러와의 전쟁의 성격을 중동 재편 전쟁으로 바꾸면서 전혀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침공에 앞장섰던 네오콘들은 중동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라크를 장악하면 미국 패권의 기반이 훨씬 튼튼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외세에 거부감이 심한 중동 지역 곳곳에 미군을 상주시키고 있다.
무리하게 새 힘의 중심을 만든 만큼 반발도 커지는 게 국제정치의 이치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및 동조하는 나라들)과 이슬람권의 대결’ 양상으로 바뀌어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아프간 내 전쟁 역시 이 대결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다. 이런 과정에 깊이 개입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매티스 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 이 전쟁은 쉽게 시작한 전쟁이 얼마나 무겁고 긴 파장을 남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최대 희생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프간 국민이다. 미국은 자신이 이기지 못한 전쟁에 대해 공개 논의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휴전으로 끝난 한국전쟁이 오랫동안 잊힌 전쟁이었듯이, 이 전쟁도 그렇게 되고 있다. 미국은 침공에 앞서 아프간을 실패한 나라(failed state)로 규정한 바 있다. 미국이 손을 떼더라도 아프간 내 혼란이 쉽게 진정되진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전쟁을 지속해서는 더 큰 상처를 남길 뿐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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