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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창의적 잉여들의 국제적 잔치 / 신현준

등록 2018-10-05 17:08수정 2018-10-06 19:06

신현준
대중음악평론가

문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5월과 10월은 무척 바쁠 때인데, 이유는 각종 페스티벌이 그때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골라야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이번 주말, 정확히 말하면 지난 4일부터 열리고 있는 ‘잔다리 페스타’라는 음악 페스티벌이 “노는 것도 실력이다! 찍는 것도 실력이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페스티벌의 생산자는 어느덧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현실을, 소비자는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 현실을 각각 맡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홍대 앞의 라이브 음악공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을 여는, 이른바 ‘인디음악 쇼케이스 페스티벌’이다. 이 청명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어두컴컴한 실내 공연장에서 초저녁에 시작해서 새벽 1시가 넘어야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 속된 말로 ‘빡세게 노는’ 행사다. 외국에서 온 음악인이나 관계자가 많아서 ‘글로벌’이라거나 ‘코즈모폴리턴’이라는 수식어가 튀어나오는 정경이 조성된다.

2012년부터 시작해서 7년째 이어오고 있으니 이 페스티벌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셈이다. 참여하는 밴드들 대다수는, 주최 측이 태워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 없이 생돈 들여서 자비로 참여한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현대 문화산업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면, 이 페스티벌의 비즈니스는 그 비밀의 문을 향해 한발짝 다가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올해의 슬로건들 가운데 “이제 잘 놀기만 하는 잔다리 페스타는 그만”이라든가, “즐기면 일이 된다!” 등의 문구에서는 주최 측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몇년째 잘 놀고 있지만(앞으로도 잘 놀 예정이지만), 이걸 통해 ‘수익’을 올릴 가능성은 막연하기 때문이다.

‘놀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페스티벌 관계자들이 불안정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은 중언부언이다. ‘주류’로 불리지 않는 문화계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몇년 전 유행한 단어를 빌리자면 ‘잉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축제 기간에는 이런 골치 아픈 생각은 접자. 어쨌든, 이 페스티벌은 세계 각지의 잉여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기회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쉽게 친구가 되는 것을 동병상련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끼리 어렵사리 서로 만날 기회를 가지고 대화와 소통을 하면서 축제 이후의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 것’에 가깝다. 한국에서 음악을 좋아하면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서양(영미, 유럽)에서 오는 밴드들도 보통사람이 보기엔 ‘듣보잡’이라서 네트워킹을 하는 데 장벽이 높지 않다.

어쩌다가 ‘아시아 인디음악’ 덕후가 되어버린 나에게 이 행사는 아시아에서 온 인디밴드들에 주목할 기회다. 때마침 여행 중에 라이브 공연을 보거나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동영상을 보면서 놀라워했던 일본, 몽골, 인도네시아 밴드들이 이번에 서울을 찾는다.

어쩌면, 이렇게 아주 드문 ‘놀라운 순간’을 위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감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쟤들 어떻게 먹고살지?”는 입 밖에 꺼내지 말아야 하는, 아니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말아야 하는 질문이다. 최태섭이 <잉여사회>에서 주장한 것처럼, 잉여란 ‘가능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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