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의 옷을 입고 귀환하고 있다. 100만평에 가까운 서울 한복판의 이 공터에는 질곡의 역사가 쌓여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였다. 임오군란 후에는 청군이 주둔했고, 러일전쟁이 끝난 뒤로는 일본군의 본거지로 쓰였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는 미군이 점유한 한국 속의 미국이다.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한 1990년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올해에는 드디어 주한미군 병력과 시설 대부분이 평택으로 옮겨갔지만, 용산공원은 여전히 안갯속에 갇혀 있다. 얼마 전엔 급기야 용산기지에 공원 대신 임대주택을 지어 미친 듯 폭등하는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00건 이상 올라왔고, 이를 떠들썩하게 다룬 보도가 줄을 이었다. 정부가 이런 근시안적인 부동산 논리에 타협할 리는 없겠지만, 30년 만에 부활한 임대주택론은 이 불운의 땅을 공원으로 치유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다. 공원화 과정을 공론의 장에 올리고 하루라도 빨리 공원 조성을 가시화해야 할 시점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용산기지 이전 합의 이후 용산공원은 급물살을 탔다. 참여정부는 용산기지의 공원화를 선포하고 ‘용산공원특별법’(2007)을 제정했다. 뒤이은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2011)으로 공원의 비전이 구성됐고,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를 통해 밑그림이 마련됐다. 그러나 정작 2012년 이후 용산공원은 얼어붙는다. 공모 당선작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웨스트8+이로재)을 바탕으로 진행된 기본설계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공전했다. 미군 이전은 계속 지연됐다. 임기 안에 착공조차 되지 않을 불투명한 사업에 박근혜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국회가 설계비를 전액 삭감해도 방관했다. 사업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형식적 절차만 챙겼다. 용산공원 계획의 중심 철학인 과정 존중, 열린 소통, 국민 참여는 모두 장식적 구호로 전락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용산공원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지난 광복절 행사에서는 기지의 공원화를 재차 확인했다. 이제 선언과 약속을 넘어, 분단의 상흔인 이 기구한 땅을 평화의 공원으로 전환시킬 구체적 실행에 나설 차례다. 우선, 6년간 끌어온 기본설계를 올해 안에 완료하고 조성계획을 법적 고시 해야 한다. 공원 영역과 경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문제는 반환 완료 이전의 공백기에 설계안을 보완하면서 풀어나가면 된다. 불안한 경제상황과 정치·외교적 변수가 언제든 용산공원을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자본의 힘과 부동산 논리가 틈입할 여지를 주면 안 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가능하도록 장기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당장 검토할 만한 또 하나의 의제는 ‘임시 개방’이다. 기지가 완전히 반환되기 이전, 그리고 반환 후 오염 조사와 정화 기간에 부지 일부를 일시적으로 개방함으로써 용산공원의 미래 가능성을 시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가장 쉬운 소통의 방법이고, 가장 효과적인 참여의 기회다. 여의도 면적과 똑같다고 말로만 듣던 이 미지의 땅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전쟁과 외세가 남긴 이 땅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생생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이 낳은 이 질곡의 땅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다음 세대를 위한 평화의 공원을 선포하는 장면, 결코 비현실적인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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