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에서 ‘데모크라티아’(민주정)란 말이 등장한 건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 뒤였다. 승리의 주역은 배의 노를 잡은 남자들이었다. 이들 하층계급은 땀과 악취로 가득 찬 격군실에서 아테네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다. 전쟁 이후 모든 시민에게 민회에서 발언할 권리가 주어졌고, 시민들 가운데서 추첨으로 최고행정관과 민회 의원을 뽑도록 했다.
혼합정·공화정이 성립한 로마의 경우 전투가 육지에서 치러졌고, 갑옷, 전차, 말을 가진 유산층이 권력을 장악했다. 평민층의 도전이 계속되는 와중에 각 집단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이른바 ‘콩코르디아 오르디눔’(계급 화합)을 이루면서 지중해의 강자가 됐다.(<기원 전후 천년사>, 마이클 스콧)
자유주의는 인류가 산업시대를 거치며 구축한 체제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쌍둥이 혁명’ 시대가 오면서 자유주의는 도전받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알고리즘, 생명공학의 발달은 수십억 인간을 고용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무용계급’을 만들 수 있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자유주의 위기의 징후다. 사회주의 혁명이 경제에선 핵심이나 정치권력은 없는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라면, 두 사건은 정치권력은 누리지만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잃는 게 두려운 이들이 중심이었다.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자유주의는 가장 강력한 정치체제 중 하나지만 ‘쌍둥이 혁명’ 시대에도 유효할지는 불투명하다.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패할 확률이 82.9%라고 한다. 미국 ‘무용계급’의 반란으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미래는 자유주의의 미래를 점쳐볼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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