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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편법과 변칙, 일방통행 / 박병수

등록 2018-09-02 17:35수정 2018-09-03 13:55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기무사를 대체할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마침내 출범했다. 청와대가 사전에도 없는 ‘해편’이란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기무사의 근본적인 개혁을 다짐했으나, 현실에선 시민단체와 군내 여론이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렸다’는 평가에 한목소리로 공명하는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군사안보지원사를 ‘도기사’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도로 기무사’라는 뜻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래도 다시는 민간인 사찰과 정치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 출발 한다니, 초심을 잃지 않길 기대하며 지켜보고 싶다.

다만 정부가 보여준 졸속과 편법, 변칙은 지적해두고 싶다. 정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의 입법예고를 8월6일부터 9일까지 나흘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정절차법 42조는 “입법예고 기간은 예고할 때 정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자치법규는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법예고를 법에 규정된 기간의 10분의 1밖에 하지 않은 것이다. 법에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40일 이상”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 꼭 법 위반이랄 순 없다. 그러나 그 “특별한 사정”이 뭐냐는 질문에 “조속한 기무사 개혁”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40일 이상’ 규정은 그렇게 졸속으로 ‘조속히’ 하지 말고 충분히 의견을 들으라는 뜻 아닌가.

군사안보지원사령 7조에 “감찰실장은 2급 이상 군무원, 검사 또는 고위감사공무원으로 보한다”고 한 규정은 국회에서도 논란이 된 사안이다. 군사조직법 16조 1항은 “국군에 군인 이외에 군무원을 둔다”고 정하고 있다. 검사는 군인도 군무원도 아니기 때문에 군사안보지원사의 부대원인 감찰실장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국회 국방위에서 “법제처장, 법무부 장관과 셋이서 별도 회의를 거쳐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확정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정부가 그렇게 논란이 제기된 법 조문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강행하면 그만인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부 신뢰도가 바닥이라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꼭 집어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편법과 변칙, 일방통행에 혐의가 없다고 할 순 없다.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또 항의 몇번 하다 말 거라고 그냥 넘어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를 돌려주고 싶다.

돌아보면 편법과 변칙, 일방통행이 이번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THAAD)를 반입할 때 경북 성주의 롯데 골프장을 취득하기 위해 경기 남양주의 군유지를 롯데와 맞바꿨다. 당시 야당은 “‘국방·군사시설사업법’에 따라 군사시설 부지는 법적으로 현금 취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금 취득을 할 경우 국회의 예산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기 위해 편법적인 토지 교환을 강행했다. 또 주한미군에 공여하는 사드 부지가 70만평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32만평만 먼저 공여했다. 33만평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 절차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었다는 사실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드러났다.

촛불 민심으로 집권한 정부가 전 정부의 적폐를 되풀이하는 건 유감이다. 민주주의가 절차에 있다는 식상한 원칙을 얼마나 더 되뇌어야 하는 걸까. 큰 일을 하는 이들에겐 사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세상에서 작은 편법, 편의적 발상이 큰 반칙 되는 건 시간문제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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