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무엇인가

등록 2018-08-21 17:51수정 2018-08-21 19:13

모든 규정의 교집합에 민족주의(nationalism)가 있다. 트럼프에게 민족이란 백인 집단을 뜻한다. 미국 민족주의는 팽창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트럼프식 민족주의를 구호로 나타낸 미국우선주의 역시 그 내용과 표출 방식으로 볼 때 시야가 좁은 거친 형태의 제국주의와 비슷하다.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가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로 심각한 결함이 드러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시대에는 새 질서가 요구된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그의 존재가 본의 아니게 역사 발전을 이끌 수 있다. 한반도·동북아에서 갑자기 조성된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국면이 그런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벌써 1년7개월이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이지만, 국민 지지율로 보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취임 직후 역대 최저인 30%대에서 게걸음을 하던 그의 지지율은 이제 40%대 초중반을 고수한다. 50%에 가까웠던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는 낮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하리라는 전망은 줄고 있다. 호황이 이어지는 경제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트럼프식의 통치 스타일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정착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인가.

■ 트럼프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용어는 역대 어느 미국 정부보다 다양하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민족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 경제국수주의라는 판단이 흔하다. 앞쪽에 ‘극단적인’ ‘거친’ 따위의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유일지도자주의(unileaderism)라는 말도 등장했다. 실제로 그는 여느 패권국 지도자와 달리 동맹국과의 긴밀한 협력조차 뒷전이다.

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대중주의적(populistic) 민족주의’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백인 중하층을 핵심 지지층으로 하는 선동적 정치를 하는 점에서 타당하다. ‘개방된 권위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비판을 인정하지 않은 채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권위주의 행태를 드러내놓고 자행한다는 뜻이다. 권위주의보다 강한 네오파시즘이란 용어도 심심찮게 눈에 띄며, ‘반자유주의적’(illiberal)이나 ‘인종주의적’이라는 형용사도 널리 쓰인다.

■ 모든 규정의 교집합에 민족주의(nationalism)가 있다. 트럼프에게 민족이란 글로벌리스트(세계주의자)가 아닌 백인 집단을 뜻한다.

트럼프식 민족주의의 뿌리를 찾는 이들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워싱턴은 1796년 고별 연설에서 다른 나라들과 동맹 관계에 얽히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당시 경쟁적으로 대외 팽창을 꾀하던 유럽 나라들과 거리를 두고 신생국인 자국의 발전에 몰두해야 한다는 충고다. 이런 흐름에 주목하는 이들은 미국이 건국 이후 20세기에 들어설 무렵까지 한 세기 이상 민족주의의 길을 따랐다고 본다. 이후 국제주의와 제국주의가 미국 대외정책의 두가지 큰 흐름을 이뤘지만, 민족주의 전통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트럼프가 이를 되살렸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문제가 있다. 민족주의 시기로 분류되는 19세기에도 미국은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이며 일관되게 팽창을 추구했다. 이 시기에 미국 영토는 동부 해안 13개 주에서 북미 대륙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단지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하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 민족주의는 팽창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트럼프식 민족주의를 구호로 나타낸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역시 그 내용과 표출 방식으로 볼 때 시야가 좁은 거친 형태의 제국주의와 비슷하다. 상식적으로 봐도, 세계 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130개 나라에 군사기지를 둔 미국이 다른 나라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자국 이익만을 꾀할 수는 없다.

■ 트럼프 정부의 성격을 규명하려면 아울러 파시즘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역사에서는 이와 연관되는 끈질긴 전통이 있다. 백인 중심의 정체성 정치를 강조하면서 내부의 적을 설정해 집요하게 공격하는 통치 방식이 그것이다.

맨 먼저 목표물이 된 이들은 원주민이다. 대중의 정치 참여가 대폭 확대된 잭슨 민주주의 시기(1825~48년)는 원주민에 대한 공세가 강화된 때이기도 하다. 서부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대서양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지역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라는 생각도 이 시기에 형성된다. 다음은 흑인이다. 이들은 남북전쟁(1861~65년)을 거쳐 노예 해방이 선언될 때까지 형식적으로도 미국 시민이 아니었으며, 뿌리 깊은 흑인 차별은 1960년대에 민권운동이 분출하는 배경을 이룬다.

가톨릭이 다음 차례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등 가톨릭 나라 출신 이민자가 늘면서 가톨릭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한다. 이는 초기부터 미국에 온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ASP)의 정체성 정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와스프는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의 주류 지배층으로 자리를 잡는다. 2차대전 이후에는 공산주의가 새 목표물이 된다.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수십년 뒤 사회주의권이 붕괴할 때까지 위력을 발휘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트럼프가 새 공격 대상으로 삼은 집단은 이민자와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이다. 이주민 배척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트럼프의 공세는 더 정도가 높고 체계적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 비유럽계 이주민 비율이 높은 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행스럽게도, 위험했던 과거의 여러 정체성 정치가 파시즘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이라고 할 만하다. 자유언론과 대중 참여, 견제와 균형의 원리 등이 주류 백인 집단의 권력 독점과 전횡을 막았다. 트럼프는 그 한계를 넘으려고 시도한다. 기존 언론을 가짜 뉴스 소굴로 몰아붙이고, 인종주의적 발언으로 백인 중하층을 자극해 대중을 분열시킨다. 초법적 조처를 잇달아 내놓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인을 기득권층으로 몰아 공격한다. 민주주의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런 행태는 파시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 파시즘으로 볼 수 있다.

■ 2016년 대선의 민주당 경선에서 좌파인 버니 샌더스 후보는 중도파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그런데 본선거에서 샌더스 후보 지지자의 12%가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를 찍었다. 힐러리가 패배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당시 선거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고 이후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은 다음 선거에서 샌더스 지지자 표의 3분의 1을 끌어온다면 트럼프의 재선이 확실할 것으로 본다.

그가 핵심 열쇠로 꼽는 게 이주민 문제다. 트럼프 진영은 이 사안을 민족주의와 일자리 문제에 모두 연계시켜 대중의 정서를 뒤흔들려 할 것이다. 배넌은 최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더 무브먼트’ 재단을 설립했다. 내년 유럽의회 선거를 겨냥해 반유럽연합·포퓰리즘 극우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다. 세계적 극우동맹을 구축하려는 시도이자 트럼프 재선 전략의 하나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유럽연합 자체를 싫어한다. 우선 유럽연합이라는 덩치 큰 집단보다는 쪼개진 개별 나라들을 상대하는 게 낫다. 강한 동맹보다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나라가 더 필요하다. 유럽연합에 내재한 사회민주주의적 원리도 그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나 경제 민주화를 위한 정부 역할 증대 등은 그의 안중에 없다.

그가 지향하는 세계는 경제 면에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를 기본 원리로 한다. 그는 기존 경제·사회체제의 개혁에 관심이 없다. 기득권층을 비판하지만 그 자신이 철저한 기득권층이며, 노골적인 친부유층 정책을 편다. 정치적으로는 힘을 앞세우는 약육강식의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에 기댄다. 미국 안에서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확산하려 한다.

■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가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로 심각한 결함이 드러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시대에는 새 질서가 요구된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그의 존재가 본의 아니게 역사 발전을 이끌 수 있다. 한반도·동북아에서 갑자기 조성된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국면이 그런 사례다.

지구촌의 새 질서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몇년 안에 2008년 경제위기에 상응하는 경제적·정치적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의 한가운데에 트럼프가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1.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2.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사설] 트럼프 재선, 국익 위한 ‘유연한 외교’로 방향 전환해야 3.

[사설] 트럼프 재선, 국익 위한 ‘유연한 외교’로 방향 전환해야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4.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사설] 교수들의 줄잇는 시국선언, 민심의 준엄한 경고다 5.

[사설] 교수들의 줄잇는 시국선언, 민심의 준엄한 경고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