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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현대의 예언가들에게 / 김지훈

등록 2018-08-19 19:03수정 2018-08-19 19:10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1972년 여름, 미국 뉴욕주립대 버펄로 캠퍼스에선 당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한 수리심리학자가 다섯번의 강의를 한다. 그중 마지막 강연은 ‘역사적 해석: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이란 제목으로, 그 강연에는 수많은 역사학자가 자리를 메웠다. 아모스 트버스키 히브리대 교수는 역사적 판단이 왜 편향되기 쉬운지 하나씩 짚어나가며, 그가 지도하던 대학원생이 진행한 연구를 소개했다.

같은 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연구팀은 사람들을 모아서 ‘닉슨이 마오쩌둥을 적어도 한번 만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공동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등 여러 예상 가능한 결과들을 주고 각각에 확률을 부여하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 닉슨이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자, 이들은 설문에 응했던 사람들을 다시 모아 예전에 어떻게 확률을 부여했는지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선 자신이 부여했던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을 부여했다고 믿었다. 즉, 사람들은 일단 결과를 알고 나면 처음에 예측할 때보다 그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훨씬 크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루크 피시호프라는 학자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는데 바로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다.

“심지어 무작위로 뽑은 자료에서도 사람들은 일정한 유형이나 경향을 찾아내는 데 선수예요. 그런데 이처럼 시나리오, 해명, 해석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반면에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거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일단 특정한 가설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면, 그 가설이 실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가 아주 힘들어지죠. (…) 지금의 역사학자가 볼 수 있는 것을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왜 보지 못했을까요?” 트버스키를 초청해 이 강의를 마련한 교수는 “강의에 참석했던 역사학자들이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돌아갔다”고 훗날 회상했다.

이 일화는 최근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에서 나온다. 루이스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논픽션 <머니볼>과 <빅 숏>의 작가로 유명한데, 이번 책은 행동경제학 창시자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함께한 연구의 전말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었다.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이는 사실상 1996년 사망한 트버스키와 같이 받은 것이었다.

사실 나도 종종 이런 오류에 빠질 때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로 제보를 받았을 때 그렇다. 제보자가 말한 내용을 듣다 보면 너무나 비합리적인 상황이라 듣던 나도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라며 덩달아 분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대방 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보자의 말은 사안의 일부만 보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적지 않았다.

최근에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보면 이런 부류의 글이나 방송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될 줄 나는 원래 알고 있었다’는 부류의 글과 온갖 시나리오, 설, 음모론 같은 것들이다.

역사학자처럼 훈련된 전문가들도 자신의 역사적 판단이 편향될 가능성이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은데, 일반인이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은 아닐 테다. 그런 주장을 접할 때면, ‘같은 사실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은 없는가’를 묻는 사고의 습관이 필요하다. 물론 상책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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