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오키나와 현지사인 오나가 다케시가 지난 8일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그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를 명백히 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첫째,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기지 73%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오키나와에 대한 명백한 구조적 차별이다. 둘째, 집중된 미군기지는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라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셋째, 오키나와 현민은 단 한 번도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 자발적으로 수용한 적이 없다. 악명 높은 후텐마 기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전쟁의 혼란기에 미군이 주민들의 거주지를 총칼과 불도저로 위협해 강제 접수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오키나와 현민들 다수가 갖고 있는 공통감각일 것이다. 일본과 미국 정부의 군사적·외교적 이해관계에 따라 오키나와의 운명은 오키나와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었다. 오키나와의 주체성은 근본적으로 부정되어왔다. 오나가 현지사가 취임한 2014년 이후에도 이러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당선 이후 상당 기간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키나와 현지사의 관례적인 면담 요청조차 거절했다. 신기지 반대를 공약으로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의 존재감을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수개월이 지나 비로소 관저에서의 면담이 결정되었을 때조차 5분간의 언론 공개 머리발언에서 ‘기지 문제’를 결코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때 오나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함으로써 의표를 찔렀다. “이번에 헤노코 신기지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라고 합니다.” 아베는 당황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정작 오나가는 뿌리 깊은 보수정치가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미국이 오키나와를 지배했을 당시 류큐 민정부 입법원 의원으로 일했고, 그의 형은 일본 복귀 후 오키나와현 부지사를 역임했다. 그 자신은 오키나와 자민당 소속으로 나하 시의원, 오키나와 현의원, 나하 시장을 거쳐 오키나와 현지사에 당선되었다. 그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임기 말 용인한 전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의 현지사 선거 당시 선대본부장으로 일했을 정도로 철저한 보수정치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찌하여 ‘올 오키나와’를 외치면서 신기지 건설 반대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는가. 그것은 진보와 보수, 자민당과 민주당이라는 이념·정파와 무관하게 일본 본토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다수파 독재주의”에 불과하고, 오키나와 현민들의 정치적 의사는 항상 1%의 소수의견으로 배제된다는 현실에 대한 각성 때문이었다. 인구도 의석수도 1%에 불과한 오키나와 현민들이 어떤 주장을 할지라도, 그것은 99%의 일본 본토 정치세력에 의해 “다수결”로 간단히 부정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쓸쓸한 각성이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비극적 현실에 무심한 이런 ‘올 재팬’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올 오키나와’ 세력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오나가의 생각이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고 외친 오나가의 주장은 오키나와식 대동단결론이었다. 그는 오키나와의 기지 문제는 미-일 지위협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것을 ‘오키나와 문제’로 치환·배제해 희생을 구조화해왔다. 오나가 사후에도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의 “다수결 독재주의”와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오키나와는 우치난추(오키나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