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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사라진’ 안중근 기념관

등록 2018-08-16 17:53수정 2018-08-17 12:05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이 들어선 것은 2014년 1월이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현장 바로 앞의 귀빈용 대합실을 개조해 만든 곳이었다. 하얼빈 역사는 20세기 여러차례 개·증축을 거치면서 애초 러시아 동청철도 시절 모습은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1988년 현대적 건물로 탈바꿈한 새 역사도, 2014년 안중근 기념관을 맞이할 무렵엔 이미 꽤 낡아 있었다.

그랬기에 기념관은 꽤 돋보였다. 과거 러시아식 건물 모양을 그대로 본떠 노란 벽의 입구를 새로 만들었다. 초록 글씨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라고 쓰인 검정 간판이 방문객을 맞이했고, 기념관 입구의 나지막한 울타리도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기념관 내부에는 안중근의 생애와 하얼빈역의 거사, 그의 사상 등에 대한 설명이 각종 사진과 함께 한국어와 중국어로 전시돼 있었다. 안중근이 남긴 붓글씨도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전시관 끝에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1번 플랫폼이었다. 바닥에는 안중근과 이토가 섰던 자리가 표시돼 있었고, 위로는 현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1909년 10월26일’이라는 거사 날짜와 함께 걸려 있었다.

불과 4년여 전 만들어진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 이야기를 꺼내면서 모든 문장을 ‘과거형’으로 쓴 것은 이 시설이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얼빈 역사가 다시금 대대적인 개·증축을 하게 되면서 기념관은 지난해 3월 휴관된 뒤 철거됐다. 1번 플랫폼도 제거됐다. 지난 5일 찾아간 하얼빈역에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가림막이 세워진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기념관과 의거 현장은 저쪽이었다. 지금은 모두 철거돼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얼빈역 역사는 100여년 전 러시아 시절 모습으로 변신 중이다. 외관은 전통적이지만 실내는 현대적으로 꾸며서, 중국이 자랑하는 고속철도에 걸맞은 동북지방 중심 기차역을 목표로 한다.

올해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던 새 역에 안중근 기념관도 돌아올까? 애초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이 들어선 것은,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시진핑 주석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성사된 일이다. 김우종 전 헤이룽장성당사연구소 소장은 “시 주석이 직접 지시한 일이니 잘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약속이지, 시진핑과 박근혜의 사사로운 약속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하얼빈역 개축 뒤 기념관을 2배로 확장해주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가봐야 안다’는 반응도 있다. 한·중·일의 역학관계가 변한 탓이다. 한-중은 사드 갈등 이후 관계가 미묘해진 반면, 중-일은 조심스럽지만 접근하는 국면이다. 박근혜 정부 때 같은 ‘한-중 반일 역사공조’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하얼빈에 안중근 기념 시설을 만들려던 시도는 일본의 반대 속에 이미 몇차례 실패했다. 중국이 일본 외자 유치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하얼빈역 기념관에 있던 흉상, 조각품 등과 설명자료들은 현재 하얼빈 시내 ‘조선민족예술관’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전시 중이다. 애초 2006년부터 하얼빈역 시설이 생기기 전까지 기념관 구실을 하던 곳이다. 예술관 관계자는 “역에 있을 때는 오가는 중국 사람들도 많이 참관했는데, 여기로 다시 오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과 극히 일부 북한 사람들만 찾는다”고 했다.

한-중 관계의 풍경인가 싶어 씁쓸해졌다. 하얼빈역 기념관을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디 나 혼자만의 것일까. 아무쪼록 다음엔 새로 단장한 기념관의 재개관 소식을 전하고 싶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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