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손에 잔혹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출처: rarehistoricalphotos.com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일본의 국제법학자 오누마 야스아키(72)의 대담집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섬앤섬)는 여러모로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넘어서길 희망하며’란 부제를 달았지만 한-일 ‘역사인식’의 지독한 괴리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오누마는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으나, 전후에 깊이 반성하고 평화헌법 아래에서 도쿄재판의 정신에 따라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 옛 연합국 주요 국가들보다 나은 행동을 취해왔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거액의 경제협력으로 중국, 동남아, 한국에 공헌해왔고, 일본 총리는 반복하여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재한 피폭자에 대한 수당 지급, 사할린 한인의 영주 귀국 조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보상 등 “반성에 입각한 행동을 축적”해왔다. 그런데 국제 사회, 특히 ‘반일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한국은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인식은 “지나친 사죄와 반성 요구가 일본 사회 전체의 우경화를 낳았다”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한국 언론이 문제” 등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정치 지도자의 상징적 행위나 홍보가 없어서” 일본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항쟁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도한 사례를 들며,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서 악수를 하고 안아주는 등 상징적 행위를 했더라면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감스럽게도 현실 가능성은 낮겠지만”이라고 덧붙인다.
애초 ‘상징적 행위나 홍보’ 따위가 아니라, ‘전후 일본’엔 그럴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그는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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