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환경과 조경' 편집주간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새로 만드는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섬처럼 단절된 현재의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확장하고 광화문 앞에는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월대와 해태상을 복원한 역사광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금보다 3.7배 넓어지고 1천억원의 예산이 든다. 4·19 혁명과 1987년 민주항쟁의 산실이자 붉은 악마의 월드컵 군무가 펼쳐졌던 ‘광장 없는 광장’이 비로소 광장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게 2009년 여름이었다. 이태 전의 차디찬 겨울, 이곳은 뜨거운 광장으로 변신해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내는 역사를 이끌었다. 이 경이로운 민주주의의 현장을 지금 왜 고쳐야 할까. 서울시의 보고서를 보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이고,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다. 사실 이 두 목적은 광장을 처음 만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 광장의 공간 구조와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간의 교통난을 감수해야 하고 또 막대한 세금이 쓰여야 한다는 데 동의할 시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의 광화문광장 형태와 디테일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바로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광장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다. 10년 전 많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여 광장을 만들었다면 시민의 일상과 더 넓은 접면을 가지고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더 쾌적한 보행 중심의 공간이 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당장 뜯어고칠 당위성이 충분한 건 아니다. 광장의 전형을 고정해 놓고 그것에 맞지 않는다고 개조하는 건 근시안적 열망이 낳은 과잉 계획일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차도를 막아 광장과 함께 쓰는 유연한 방법도 있고, 광장 양쪽의 여러 빈 공간을 지혜롭게 연결하는 방안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입체 교통 계획을 통해 세종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그랜드 플랜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실험과 소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명분에 대해선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간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많은 철거와 복원 행위는 대부분 전근대 조선 왕조를 순수의 원형으로 삼고 그것을 단편적으로 소환하는 형식이었다. 월대와 해태상을 복원해 조선의 역사 공간을 재현하는 것만 역사성 회복이 아니다.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는 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의미가 적층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촛불로 타오른 시민혁명의 기억도 조선의 왕궁이나 육조거리 못지않게 소중하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 사업의 속도다. ‘토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속도전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7월 말에 전문가와 시민 150명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토론회를 열었다. 초대장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광화문 시대를 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함에 따라…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서 동시에 8월 말 설계공모, 내년 말 설계 종료,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과속 주행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성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진정한 광화문 시대를 여는 과정의 첫걸음이라면,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미래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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