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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박근혜가 보고 싶다 / 김남일

등록 2018-08-07 18:16수정 2018-08-08 12:20

김남일
법조팀장

검사들과 주말 산행에 나섰을 때다. 관악산 중턱까지 아이스박스를 올려놓고 하드 파는 남자를 만났다. “얼마나 버시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등산객이 많아 주말 이틀 꽤 번다”며, 그래도 ‘투잡’을 뛴다고 했다. 최근에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단다. 어떤 영화인지 물었다. “나쁜 경찰과 검사가 주인공인데, 거기에 기자도 나오고….”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드를 한 번에 깨물어 삼켰다. “많이 파시라”는 말을 남기고 산을 오르며 누구는 웃고, 하드를 통으로 삼킨 누구는 두통을 호소했다. 영화 <부당거래>가 개봉된 것은 얼마 뒤다. 하드 팔던 남자의 얼굴은 영화에서 찾기 힘들었다.

2011년 대법원장 지명 소식을 미국 네바다 산맥에서 들을 정도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산을 좋아한다. 상고법원 도입에 한창 열을 올릴 때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들과 산을 탔다. 식사 자리에서 동티가 났다. 상고법원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대법원장의 말이 트레킹 코스처럼 길었다. 산행에 함께한 <한겨레> 기자가 ‘적당히 하시라’고 했고, 이에 분기탱천한 법원행정처 간부와 말싸움이 벌어졌다. 일촉즉발 상황을 담은 ‘찌라시’가 돈 것은 얼마 뒤다. 대법원장 호위무사로 나선 간부는 지금 검찰 수사 대상이다. 법원행정처 어딘가에 당시 만들어진 ‘기자 동향 파악’ 문건이 있을지 모르겠다.

2016년 12월 국회 국정조사에서 국가정보원이 양 대법원장의 업무시간 중 등산 논란 등 동태를 파악한 사찰 문건이 공개됐다. 당시 양 대법원장은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곧바로 “법관 사찰은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며 “관련자의 명확한 해명을 강력 촉구”하는 공식 입장을 냈다. 대법원은 “찌라시도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처럼 해당 문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벌인 판사 뒷조사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되겠다.

<부당거래> 속편이 나온다면 주인공은 검사에서 판사로 바뀔 판이다. 재판 거래, 정치권 로비, 언론 활용의 교과서적 문건이 너무 많아 시나리오 작업도 쉬워 보인다. 전편에서 명품 시계를 챙겼던 기자는, 속편에선 ‘기사 거래’의 조연으로 신스틸러가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재판 거래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카메오 출연이 어렵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부터 국정농단 사건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 재판에도 나오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출석권’을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나오지 않으면 재판을 진행하지 못한다. 피고인의 권리 차원이 아니라 궐석(결석) 재판을 막겠다는 취지다. 구치소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버티면 재판부는 영장을 발부해 강제구인할 수 있다. 어찌된 일인지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밀당’ 끝에 구인을 포기했다. 두 차례 생중계된 국정농단 사건과 특활비 사건 1심 선고는 ‘박근혜’ 없이 진행됐다. 대신 판사가 주인공이 됐다.

앞으로도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재판 출석을 거부할 것이다. 두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선고된 징역은 32년이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고 형기를 꽉 채우면 그를 실물로 볼 기회는 사실상 사라진다.

오는 24일 오전 10시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일에는 법정에 앉은 ‘피고인 박근혜’를 보고 싶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속 명대사는 이럴 때 써먹어야 한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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