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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기무사 개혁의 첫걸음,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

등록 2018-07-30 14:09수정 2018-07-30 19:03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1983년 12월의 어느 날, 동부전선의 전방 대대에 배치받아 처음 마주친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대장에게 전입 신고를 하는데, 젊은 중사 한명이 슬리퍼 차림으로 난롯가에 기대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중령인 대대장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얼굴이 아니라면, 둘이 친구라도 되나 생각했을 것이다. 계급이 생명인 군대에 이런 식의 ‘계급 파괴’가 존재한다는 건, 군기 바싹 든 이등병에겐 놀라운 광경이었다. 육군 중사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서 그가 보안부대 소속이란 걸 알았다. 보안사령관 출신이 대통령이던 시대, 말 그대로 보안사(지금의 기무사)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의 일이다.

국회에서 대령인 기무부대장이 국방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대드는 걸 보면서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린 건, 수십년이 지났어도 기무사의 본질은 변함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군 지휘관 비리를 수집하고 쿠데타를 방지한다는 기본 임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괄목한 만한 민주주의 진전에도 기무사가 건재한 건 역대 정권 모두 그 조직을 필요로 했기 때문일 터다.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출신 대통령은 스스로 쿠데타의 전력이 있기에 더욱 군 지휘관들에 감시의 촉수를 뻗쳤고, 김영삼 이후 문민 대통령들은 ‘군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군 내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기무사령관 대면 보고를 계속 받은 건 군 내부의 동향 파악을 위해서였다. 반세기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룬 ‘소수파 정권’에 군의 움직임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핵심 인사는 “군의 정치 개입을 막는 게 중요했고 그런 지시가 기무사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기무사령관 직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폐지됐다. 기무사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군 인사 자료는 노무현 청와대에서도 계속 활용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럴진대, 이명박·박근혜 청와대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무사를 활용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반 쿠데타’를 존재 이유로 삼는 기무사의 야누스적 특징이다. 1979년 12·12 쿠데타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신군부에 체포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쿠데타를 막아야 할 보안사가 정보 채널을 독점한 채 역적 모의를 하고 있었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에 대비해 계엄 실행문건을 만든 현 기무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기무사를 바꾸기 위해 대통령 보고는 반드시 국방장관을 거치도록 하고 아예 민간인을 기무사령관에 보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 기무사 개혁은 시급하지만 그것이 곧 군의 문민통제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군부정권이 종식된 지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군은 여전히 시민사회와 유리된 ‘그들만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건 기무사의 힘을 빼는 걸로 바뀌지 않는다. 군의 폐쇄성을 깨뜨리지 않고 기무사를 국방장관 직속 기관으로 바꾸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 기무사 개혁보다 중요한 건 이번 기회에 군의 문민통제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일이다. 그 첫걸음이자 가장 의미있는 진전은 순수 민간인 국방장관의 기용이라고 본다.

우리처럼 강력한 대통령제인 미국엔 기무사 같은 조직이 없다. 군 내부 비리는 펜타곤(국방부)의 감찰부서가 맡고, 정보 수집은 국방정보국(DIA)에서 담당한다. 군 내부 정보나 동향을 백악관에 직접 보고하는 조직을 두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국방장관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헌법에 명시하고, 국방장관은 민간인 또는 군에서 전역한지 10년 지난 인사만 임명하도록 해서 확실하게 군의 문민통제를 보장한다.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민간인이 군을 통솔할 수 있느냐는 기우를 넘어설 때가 됐다. 몇년 전 스페인에서 만삭의 여성 국방장관이 군을 사열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수년의 복무경험이 있는 이들을 두고 ‘군 출신이 아니라서 국방정책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오히려 군 장성, 그것도 대장 또는 중장 출신 중에서만 국방장관을 고르다 보니 숱한 자질과 비리 논란에도 그냥 눈 감고 발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쿠데타를 기무사로 막을 게 아니라, 군의 민간통제를 확립함으로써 막는 게 정도이자 근본 해결방안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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