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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축구의 세계: 국가·인종·민족 / 신현준

등록 2018-07-13 18:25수정 2018-07-14 14:37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스포츠 라이트팬

미국인 저널리스트 프랭클린 포어의 책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는 축구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을 무려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갱스터, 포르노그래피, 유대인 문제, 훌리건, 흑인, 대부호, 민족주의, 이슬람의 희망, 미국의 문화전쟁 등이 망라되고 있다. 하나하나를 상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축구를 많이 경험할수록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축구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월드’컵이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글로벌한 규모의 메가이벤트, 수동적 관중을 뛰어넘는 팬덤, 티브이 실시간 중계를 통한 미디어 효과, 스포츠용품과 비디오게임 등의 관련 산업에 대해 그저 무관심하기는 힘든 일이다. 운이 좋으면, ‘사실은 애국주의자이면서 코스모폴리탄주의자인 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새삼스럽지만, 월드컵 축구란 국가대항전이라서 각국 리그에 기반한 클럽 축구와 다르다. 그래서 월드컵은 ‘국가’라는 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다. 내가 월드컵을 처음 지켜볼 때와 비교하면 국가의 의미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국가, 인종, 민족 사이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는데, 너무 복잡하니 유럽에만 집중해 보자.

불세출의 선수 한 명의 이야기로 시작하자. 1966년 월드컵을 주름잡은 에우제비우인데,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출신인 그는 ‘흑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유럽의 국가대표팀이 백인들로만 구성되었을 때 일이다. 인물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을 ‘초인적으로 잘한다’는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대놓고 ‘흑’이라는 수사를 붙인 것은 요즘 같으면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만한 일이다. 고 정운영이 네덜란드의 요한 크라위프에 대해 ‘설원을 달리는 순록 같다’고 우아하게 표현한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반세기가 지난 뒤 ‘서유럽 선진국’의 국가대표에 아프리카의 후예들이 수두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노예무역과 식민주의라는 오래된 역사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른바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일반화된 이민의 결과인데, 그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음바페는 나이지리아 이주민인 아버지와 알제리계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벨기에의 루카쿠는 콩고계 이주민을 부모로 두었고, 잉글랜드의 린가드는 카리브해의 섬에 가족의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멀거나 가까운 선조를 둔 선수들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스위스 대표인 샤키리와 자카는 알바니아계고, 독일 대표인 외질과 귄도안은 터키계다. 터키는 물론이고 알바니아에도 이슬람 인구가 꽤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크로아티아의 라키티치는 스위스 국적 문제로, 비다는 우크라이나 지지 행동으로 작은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유럽의 동쪽 혹은 그 너머에서 온 이들이 크고 작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징후적이다.

이걸 두고 ‘기독교,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공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이상(理想)에 균열이 오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한낱 공놀이를 침소봉대한다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 말고 이런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유럽 외부로도 알려주는 분야가 또 있을까. 막대한 돈이 오가는 슈퍼휴먼들의 잔치에서도 ‘세계는 통합과 화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커녕 온갖 분열과 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비밀이 폭로되고 있으니 말이다. 월드컵의 ‘월드’에서 아시아는 여전히 변방이라는 비밀 아닌 비밀도…. 그래서 내년 여름부터는 여자월드컵축구를 꼭 챙겨 봐야겠다. 분명히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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