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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고래’ 싸움터에서 ‘명태’로 살아가기

등록 2018-07-12 18:30수정 2018-07-12 19:26

김영배
논설위원

광해군이 강홍립을 도원수(군 최고사령관)로 삼은 1만3천명 남짓의 조선 군대에 출병 명령을 내린 것은 1618년 7월이었다. 한양에서 출발한 강홍립 부대가 압록강을 넘은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이듬해 1월말이었다고 한다. 교통수단 미발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의적인 ‘시간 끌기’였다. 병자호란의 시작인 1636년 12월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 군대가 한양에 들이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강홍립 부대의 ‘굼벵이 행군’은 광해군의 비밀지시(‘정세를 잘 살펴 행동을 결정하라’)에 따른 것이었다. 늙은 대국 명나라의 지원군 파병 요구를 마지못해 받들면서도 신흥 강국 후금(뒷날 청나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고육책이자, 전란을 피하려는 중립외교술이었다.

5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해 철강 무역분쟁 관련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5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해 철강 무역분쟁 관련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사에서 ‘첫 국외 파병’(역사학자 이이화)이랄 수 있는 강홍립 부대의 출병 뒤 400년 만인 올해, 우리나라는 또 두 고래 사이의 거센 다툼에 휘말려 있다. 이달 6일 0시(미국 동부시각) 미국의 선제 조처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의 파열음이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가 10일에는 6031개 품목 2천억달러(한화 224조원)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밝혔다. 1차로 1102개 품목 500억달러(이미 시행 818개 품목 340억달러) 상당에 대한 관세 부과에 중국도 지지 않고 맞받자 내놓은 2차 공격 예고다. 두 고래와 정치경제적으로 얽힌 한국 또한 영향권에 들어 있다. 이번 고래의 덩치는 예전보다 크고, 싸움터는 중국 대륙에서 태평양을 사이에 둔 세계 전체로 넓어졌다. 한국의 덩치가 이제 새우 꼴을 벗어나 명태쯤은 된다는 걸 위안거리로 삼아야 할까.

고래들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명태급이 할 일의 우선은 정보수집일 것 같다. 이번 다툼이 단순한 무역분쟁인지, 전면적인 무역전쟁, 나아가 무력전쟁으로까지 번질 성질의 것인지 판단할 자료를 최대한 모아야 할 처지다. 두 고래가 막판에 타협할 것이라거나 무역구조상 중국이 물러설 것이라는 초창기 대개의 관측이 어긋나 정보전은 더 중요해졌다. 광해군 시절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립외교의 밑받침은 현지 취재로 모아놓은 세밀한 정보였다.

궁극적인 열쇠는 우리 자체의 몸 관리다. 정보수집이 외치라면 몸 관리는 내치다. 평균 명태급인 우리 몸의 실상을 보면 머리는 참치, 꼬리는 멸치 꼴로 상체 비만, 하체 부실이다. 상·하체의 격차는 소득 5분위 배율 같은 분배지표로 드러나 있고 고용부진, 가계부채 누증 탓에 좁혀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3대 축의 앞자리인 ‘소득주도 성장’ 또한 부실한 하체의 근력을 키워 상·하체 균형,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것으로 여겨진다. ‘혁신성장’은 상체의 체질 개선, ‘공정경제’는 하체의 몫(중소기업 기술)을 상체(재벌 대기업)에서 가로채지 못하게 규칙을 세우는 일쯤 될 테고.

정보전과 외치에 밝았던 광해군은 내치의 실패로 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광해군 중립외교의 상징 인물인 강홍립 장군의 말년도 불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실 있는 내치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외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정부가 곧 내놓을 내년도 예산·세제 개편안에 하체 단련책을 많이 담아냈으면 좋겠다. 부동산 보유세 개편안을 후퇴시키는 쪽으로 한발 나아가고,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을 탓하는 일이 하체를 단련하려는 의지나 자신감의 상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엄중한 외부 상황은 엄중한 내부 개혁을 하기에 좋은 토양이기도 하다.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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