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부문장 겸 에디터 서울 종로에 들어선 자전거 전용도로를 볼 때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가뜩이나 차와 인파로 혼잡한 도심 한복판에 자전거 도로까지 욱여넣다 보니 자동차나 사람, 자전거 모두가 불편해 보인다. 덩치 큰 버스와 자동차들의 거친 우회전은 자전거의 안전을 수시로 위협하고, 주변 상가에 물건을 나르려 주정차한 화물차는 아슬아슬한 장애물이다. 갓길에 손님을 태우고 내려야 하는 택시, 갈 길 바쁜 오토바이들의 무단침입도 곡예 운전을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단속을 강화하거나 자동차와 자전거가 도로를 공유하는 방식을 익혀가면 차차 개선될 일이다. 자전거 도로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차량통행을 적극적으로 줄여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궁극적으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역할도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여의도, 강남으로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차선 다이어트’를 통해 교통 체증, 즉 불편을 초래해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단순히 가까운 도심 내 이동만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강남과 강북, 서울 교외지역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까닭에 차량들이 우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자칫 원성만 높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미세먼지 감축 대책으로 대중교통 무료이용을 내세웠다가 뭇매를 맞은 서울시가 그보다 효과적인 ‘차량 도심 진입 제한’을 위해 자전거 도로 확대를 명분으로 삼은 것이기도 하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지언정 시민 건강과 대기질 개선을 위해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려는 서울시의 의지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517억원의 예산을 들인 자전거 도로가 과연 자전거 이용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서울시가 본보기로 삼은 곳 중 하나인 덴마크가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 나라의 고유한 환경·문화적 특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우선 도시 규모가 작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면적과 인구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친 정도에 불과하다. 도심 내 이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자전거로도 큰 불편 없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반면 대중교통은 우리에 견줘 매우 비싼데다 그다지 편리하지도 않다. 버스나 지하철의 운행 간격은 성기고 가장 짧은 구간의 버스 요금이 4천~5천원에 이른다. 학생 등 젊은이들이 유독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건 값비싼 교통비를 아껴 보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적 강요’다. 더욱이 서울의 마을버스처럼 주택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대중교통은 찾아볼 수 없다. 자전거가 여가나 건강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보조 교통수단’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유럽의 도시들은 수시로 언덕과 고갯길이 나타나는 서울과 달리 식탁처럼 펼쳐진 평평한 지형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기 위해 우리에겐 필수품이 된 ‘21단 기어’가 그들에겐 옵션일 뿐이다. 한여름 최고기온이 25도 안팎인데다 습도까지 낮은 기후도 자전거를 생활의 일부가 되게 했다. 자전거 인프라 ‘공급 확대’가 자전거 이용자 ‘수요 증가’로 이어지리란 기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30도가 훌쩍 넘는 찜통 같은 기후에, 1300원이면 에어컨 빵빵한 대중교통으로 후미진 골목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서울 도심에서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곡예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할 이가 얼마나 늘어날까. 자전거 도로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요인들이 사전에 충분히 고려되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환경과 맥락이 거세된 채 껍데기만 이식된 정책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다. mis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