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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비정상적 정당의 자멸’과 민주주의의 전진

등록 2018-06-13 22:01수정 2018-06-14 09:50

김종구
편집인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여당의 압승, 야권의 참패, 진보개혁 세력의 승리, 보수의 궤멸….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비정상적 정당들의 자멸’이라는 말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념과 정책, 정체성과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의미의 정당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보수라는 이름도 아까운 정당이다. 극우적 안보이념이 일용할 양식이고, 궤변과 막말, 극단적 억지가 생존 무기인 정당에게 보수정당이라는 호칭은 과분하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의 궤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서 이런 극우정당이 몰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민주주의의 위기다.

바른미래당은 이름과 달리 ‘바름’도 ‘미래’도 보여주지 못했다. 뿌리와 정체성이 다른 정치세력의 급조된 결합부터가 비정상적이다. 정당이 자신의 이념과 철학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탈이념 정당’을 내세운 것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의 불협화음과 모순된 행보 속에서 광역선거 및 재보궐선거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나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은 거대한 지각변동의 시대다. 한반도에 드리웠던 냉전의 먹구름이 물러가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 질서가 빠른 속도로 형성되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도 촛불혁명 이후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런 세계사적 흐름에 눈감고,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성실하게 통찰하지 않았다. 이들의 자멸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혹자는 여야의 균형,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깨진 선거 결과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다. 보수도 보수다워야 보수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보수-진보 균형 타령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비정상적 정치세력의 몰락은 그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축복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지역 이데올로기도 깨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야당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크게 기여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유익한 자멸이다. 오히려 극우정당이 일부 지역이지만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방증이다.

다음 국회의원 총선까지 남은 2년 동안 비정상적 정당들은 정상궤도에 진입할까. 그리고 보수는 전열을 새롭게 정비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치에서 전통적 보수의 특징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내용상으로는 반공 이데올로기, 지역적으로는 영남권, 세대로는 노년층이다. 보수가 새롭게 태어나려면 이 세 가지 고리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미 그 공식이 깨지고 있음을 6·13 선거 결과는 웅변한다. 안보 문제에 대한 보수층의 인식 변화부터가 그렇다. 전통적인 보수우익단체들마저 남북정상회담, 북-미 회담 등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을 두고 변절이니 배신이니 하며 핏대를 올리는 어리석은 태도로는 떠나가는 보수층 유권자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따위의 막말은 ‘대안 없는 정당’의 추락을 가속화할 뿐이다.

보수의 재건은 단순한 이합집산과 짝짓기 방식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보수한테 지금 필요한 것은 개편이 아니라 개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태극기 부대와의 단절이 그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런 용기마저도 없어 보인다. ‘사람’의 문제에 이르면 더욱 심각하다. 막가파 정치인 홍준표, 존재감 없는 유승민,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갈지자 행보의 안철수, 이 세 사람의 역량과 리더십 실체는 이번 선거 결과로 여실히 확인됐다. 낡은 인물은 떠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은 떠오르지 않는 현실, 그것이 지금 두 야당이 마주한 현주소다. 그러니 새로운 보수의 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야당이 오직 기대하는 것은 집권여당의 실수뿐일지도 모른다. 상대편의 실수로 전세를 만회하는 것은 정치 세계의 일상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권은 승리감의 도취, 자만심을 특히 경계할 일이다. 비정상적 정당들의 비정상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어쨌든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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