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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대장동지’의 첫 외출 / 백기철

등록 2018-06-11 17:46수정 2018-06-12 00:58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09년 하반기 후계자로 등장할 때 당대회 등에선 ‘대장동지’ ‘김대장’ 등의 표현이 나왔다. 2016년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발간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이미 1996년 스웨덴에서 ‘대장동지’란 말을 들었다고 적었다. 당시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장성택의 딸 장금송이 스웨덴에 유학했는데, 북한 외교관들이 그를 대장동지로 불렀다. 김씨 일가 자녀를 가리키는 대장동지는 오랜 역사를 지닌 호칭인 셈이다.

김정은의 싱가포르행을 수행한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은 ‘대장동지’와 인연이 깊다. 리수용은 스위스 대사 시절 유학 온 김정은, 김정철 형제를 돌봤다. 1990년대 초부터 김정일을 수시로 만났는데, 김정일이 외무성에 지시하는 ‘말씀’의 대부분이 리수용을 거쳐 내려왔다. 리용호는 김정일의 비서실장 격인 ‘3층 서기실’ 실장이었던 리명제의 아들이다. 리용호는 1990년대 초 1차 북핵 위기 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벼랑끝 전술’의 창안자라고 한다.

‘대장동지’ 김정은의 싱가포르행은 스위스 유학 이후 서방으로의 첫 외출이다. 태영호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북한 외무성에 북한이 이를 지킬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1·2차 북핵 위기 과정에서 김정일은 미국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이중플레이를 했을 뿐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2인자까지 지낸 태영호의 책에는 북한 외교의 속살이 제법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해석이나 전망은 남한에 온 뒤 주변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제법 있어 보인다.

김정은이 처한 현실은 김정일 때와는 많이 다르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을 상대로 더 큰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게 태영호의 주장인데, 그 진위는 머지않아 가려질 것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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